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採蓮曲(연밥 따는 노래)
採蓮曲(연밥 따는 노래) 채련곡 許蘭雪軒(허난설헌) 秋 淨 長 湖 碧 玉 流 가을날 맑고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추정장호벽옥루 蓮 花 深 處 繫 蘭 舟 연꽃 피는 깊은 곳에 고운 배(蘭舟)를 매어두었네. 연화심처계난주 逢 郞 隔 水 投 蓮 子 낭군을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봉랑격수투연자 遙 被 人 知 半 日 羞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 부끄러웠다네. 요피인지반일수 【 註釋 】採 채(캐다), 淨 정(깨끗하다), 秋淨長湖 추정장호(가을 맑고 긴 호수), 碧 벽(푸르다), 碧玉流 벽옥류(푸른 옥처럼 흐르다), 繫 계(매다/묶다), 蘭舟 난주(난초 배/고운 배를 의미), 逢 봉(만나다), 郞 랑(사나이), 隔 격(사이가 뜨다/거리), 隔水 격수(물을 사이에 두고), 投蓮子 투연자(연밥을 던지다), 遙 요(멀다), 被人知 피인지(남이 알게 되다), 羞 수(부끄럽다), 半日羞 반일수(반나절 동안의 부끄러움) 【 作者 】許蘭雪軒허난설헌(1563 명종18～1589 선조22) : 조선 중기 선조 때의 여류시인이다. 본명은 楚姬초희, 호인 난설헌으로 널리 알져졌다. 자는 景樊경번, 본관은 陽川양천이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누나이다. 조선 최고의 시인 李達이달에게 시를 배웠으며, 8세 때 이미 시를 지어 천재적인 詩才시재를 발휘하였다. 1577년 15세의 나이에 金誠立김성립과 결혼하였으나 원만하지 못했다. 딸과 아들을 모두 잃고, 몰락해 가는 친정을 보면서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詩作시작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랬다. 27살 나이에 죽은 후 동생 허균이 중국인 朱之蕃주지번에게 詩를 주어 중국에서 시집 ‘蘭雪軒集’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으며, 1711년 일본에서도 간행되었다. 주요작품으로 ‘遊仙詩’유선시, ‘貧女吟’빈녀음, ‘哭子’곡자 등 200여수가 전한다. 【 評說 】 좁은 조선, 여성으로 태어난 한(恨) 남녀 사랑의 감정을 여성의 감각으로 그려낸 樂府體악부체의 사랑노래이다. 악부는 민간의 가요인데, 당나라 무렵에는 악부, 즉 유행가 스타일을 본뜬 詩가 등장한다. 원래 악부는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지만, 노래와는 점차 결별하고 악부의 정조를 흉내 내어 사랑을 노래한 것이 많았다. 조선시대에도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그리기 위해 옛 악부의 이름을 내세워 사랑을 노래했다. 가을 맑은 호수, 연꽃 핀 으슥한 곳에 배를 매어 놓고 저 멀리 있는 낭군에게 연밥을 던져 신호를 보내다가 다른 사람에게 들켜서 부끄러웠다는 내용이다. 허난설헌은 신사임당, 황진이 등과 함께 조선조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다. 사임당은 이율곡의 어머니로 만세의 어머니 상이 되었고, 황진이는 詩才시재가 뛰어나고 기생으로서 시대를 앞선 삶을 살아 찬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허난설헌은 대갓집 따님이자 마님이었으며, 詩才시재가 뛰어나 일세를 풍미하였음에도 신사임당과 황진이와는 달리 불우한 아내이자 어머니였으며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27세 나이로 요절한 여인이다. 이러한 허난설헌이 여덟 살에 ‘廣寒殿白玉樓上樑文’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었다. 광한전은 신선들이 산다는 달(月)에 있는 궁전으로 이 광한전에 백옥루를 새로 짓는다고 상상하고 그 건물의 대들보를 얹는 상량식에 자신이 초대 받았다고 하면서 상량문을 지었다. 불과 여덟 살의 어린나이에 지었다고 믿기가 어려우며, 정말 그녀가 쓴 것인지 의심을 받을 정도이다. 어려서부터 천부적인 글재주를 보이던 허난설헌은 이 상량문을 짓고 女神童여신동이라 칭송되었다. 상량문 첫 부분에 광한전에 사는 신선들의 생활을 묘사하고, 그가 여러 신선들을 초대하기 위하여 백옥루를 짓게 된 배경을 묘사했다. “…어영차 동쪽으로 대들보를 올리세. 새벽에 봉황을 타고 요궁에 들어가 날이 밝자 해가 부상 밑에서 솟아올라 일만 가닥 붉은 노을이 바다에 비쳐 붉도다.…” 어린 나이지만 그녀의 道家的도가적 풍격은 그 집안의 영향일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 허엽이 화담 서경덕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통해 내려온 서화담의 영향이 그녀에게 미쳤고, 그녀도 어려서부터 신선들의 설화집인 ‘太平廣記’태평광기와 같은 책을 암기할 정도로 즐겨 읽어서 신선세계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작자가 지은 ‘遊仙詩’유선시 87수도 仙界선계를 동경하고 있다. 또 작은 오빠인 허봉이 문학친구인 이달을 초대해 허난설헌과 허균에게 글을 가르치게 했다. 이달은 조선 최고의 시인이지만 서자로 태어나 벼슬길이 막힌 불운한 시인이었다. 허난설헌은 이달에게서 자유분방한 성격의 당나라 詩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詩가 ‘가난한 쳐녀의 읊조림’이라는 ‘貧女吟’빈여음(4수 연작시)이다. 豈是乏容色(개시핍용색) 어찌 용모가 남들보다 못하겠는가? 工鍼復工織(공침부공직) 바느질에 길쌈도 솜씨가 있다네. 少小長寒門(소소장한문) 어린 시절 가난한 집에서 자라니 良媒不相識(양매불상식) 중매쟁이가 알아주지 않는구나! * 乏 핍(가난하다/인물이 나쁘다는 뜻), 媒 매(중매) 작자 자신은 이런 처지에 놓여 있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의 처녀 처지가 되어 그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죄 아닌 죄로 늘 고달프고 슬퍼야 하는 노처녀에게 부치는 애달픈 동정이다. 도가풍의 자유로운 집안분위기 속에서 詩作시작에 힘쓰고 신선을 동경하던 이런 마음을 가진 처녀가 15세에 김성립과 혼인했다. 안동 김씨로 그녀보다 한 살 많았다. 시집인 김씨 가문은 붕당정치에서 남인계열의 명문가로 사상적으로 성리학에 더 고착되어 보수적이었다. 성리학으로 무장된 가부장적인 가문으로 시집온 허난설헌은 어려운 시집살이를 했고, 남편과도 그리 화합하지 못했다. 성리학적 윤리가 사회를 점차 옥죄어 오는 상황 하에서 詩를 쓰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姑婦고부간에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가고, 남편조차 그녀를 보듬어주기보다는 과거공부를 핑계로 바깥으로 돌며 가정을 등한시했다. 뛰어난 여인과 평범한 남성의 결합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때 남편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생활 속에서 지은 詩가 ‘閨怨’규원(규방의 원망)이다. 그래도 이 詩를 지을 무렵에는 아직 남편을 그리워하는 정이 남아있을 때라고 하겠다. 燕掠斜簷兩兩飛 제비는 처마를 비스듬히 스치며 짝지어 날고 연략사첨양양비 落花搖亂撲羅衣 지는 꽃잎은 어지럽게 날리며 비단옷에 떨어진다. 낙화요란박라의 洞房極目傷春意 깊은 방에 앉아 눈이 닿는 곳마다 봄을 상심하는데 동방극목상춘의 草綠江南人未歸 풀 푸른 강남에 있는 낭군님은 돌아오지 않는구나! 초록강남인미귀 * 掠 략(스치어지나가다), 搖亂 요란(어지럽게 흔들린다), 撲 박(치다), 洞房 동방(깊숙한 방/규방), 極目 극목(눈이 다하도록) 허난설헌의 시집살이도 점차 어려워져가고, 친정도 아버지 허엽(1517～1580)의 죽음과 오빠 허봉(1551～1588)의 잇따른 객사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남편 김성립과의 순탄치 못한 부부관계도 그렇거니와 딸과 아들 두 남매를 잇달아 잃고 뱃속의 아이마저 유산하는 불행을 당한다. 이때의 슬픔을 ‘哭子’곡자(자식을 곡함)란 詩를 통해 나타냈다.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잃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금년에는 귀여운 아들을 잃었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슬프고 슬프구나! 광릉 땅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두 무덤 마주하여 생겨났다. (중략) * 喪 상(죽다/잃다), 雙墳 쌍분(두개의 무덤), 相對起 상대기(서로 짝하여 만들어지다) 어린 딸과 아들을 2년 사이에 다 잃고 만 모정의 아픔이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 여성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시어머니의 학대, 고지식하고 밖으로 도는 남편, 몰락하는 친정에 대한 안타까움, 잃어버린 자식들에 대한 슬픔 등이 겹쳐 점차 삶의 의욕을 잃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외삼촌댁에 머물 때 자기의 죽음을 예언하는 詩를 지었다. 결국 詩에서 말하는 대로 되었는데, 이것을 詩讖시참이라 한다. 죽음을 예감한 이 詩가 바로 ‘夢遊廣桑山詩’몽유광상산시이다. 碧海浸瑤海(벽해침요해)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청란의채란) 푸른 난 새가 빛깔 고운 난 새에 기대었다. 芙蓉三九朶(부용삼구타) 연꽃 스물일곱 송이가 紅墮月霜寒(홍타월상한) 붉게 떨어지니, 달빛이 서리 위에 차갑기만 하구나! * 浸 침(젖는다/스며들다), 瑤海 요해(구슬 같은 바다), 倚 의(기대다/의지하다), 彩鸞 채란(빛깔 고운 난새), 芙蓉 부용(연꽃), 三九朶 삼구타(스물입곱 송이), 墮 타(떨어지다), 月霜寒 월상한(달이 서리 속에 차갑다), 詩의 예언이 적중해 그녀의 나이 27세에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서 집안사람들에게 “금년이 바로 3 ․ 9 수(27세를 뜻함)에 해당하니, 오늘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다.”하고는 눈을 감았다고 한다. 동생 허균도 그의 鶴山樵談학산초담에서 “형 허봉이 꿈속에서 시를 지었는데, 그 해 가을에 갑산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누나 난설헌도 꿈에 ‘夢遊廣桑山詩’몽유광상산시를 짓고 이듬해 세상을 마쳤다.”고 하였다. 아무튼 허난설헌은 반도 좁은 조선에, 여성으로 태어났음과 김성립의 아내로서 부부금슬이 좋지 않음을 평생의 세 가지 恨한으로 여겼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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