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臥松陰下作 소나무 그늘에 누워서
소와송음하작

                                                                    李書九(이서구)

讀 書 松 根 上 솔뿌리 위에 걸터앉아 글을 읽노라니
독서송근상

卷 中 松 子 落 책장 위에 솔방울이 떨어진다.
권중송자락

支 筇 欲 歸 去 지팡이 짚고 돌아가고자 하는데
지공욕귀거

半 嶺 雲 氣 白 고갯마루에 반나마 구름이 하얗게 일어난다.
반영운기백


【 註釋 】松根 송근(소나무 뿌리), 卷 권(말다/책), 松子 송자(솔방울), 支 지(가르다/버티다), 筇 공(지팡이/대나무 이름), 支筇 지공(지팡이를 짚다), 雲氣 운기(구름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기운/여기서는 白백과 호응하여 흰 구름<白雲>을 의미), 嶺 영(재 : 산마루의 고개/산봉우리)

【 構成 및 韻律 】5언 절구이지만 古絶句고절구 형식으로 근체시의 격식에 맞지 않으며, 평측도 자유롭고 운자도 평성이 아니다. 운을 붙이는 2 ․ 4구 끝 자는 入聲 ‘陌’ 韻 ‘落’과 入聲 ‘樂’ 韻 ‘白’이다. (참고 : ○ 평성, ● 측성)

【 作者 】李書九이서구(1754～1825) : 조선 영 ․ 정 ․ 순조 때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洛瑞낙서, 호는 惕齋척재 혹은 薑山강산이다. 이조판서 ․ 대사헌 ․ 우의정 등을 역임하였으며, 명문장가로 시에 뛰어나 이덕무 ․ 유득공 ․ 박제가 등과 함께 漢詩한시의 사대가로 알려졌다. 저서에 ‘강산집’이 있고, 시호는 文簡문간이다.

【 評說 】 소나무 뿌리 위에 앉아 책을 읽다

도학자 같은 선비가 길을 가다가 소나무 뿌리 위에 걸터앉아서 잠시 책을 읽다가 일어나 유유히 다시 길을 나서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읽을수록 맑고도 고요함이 느껴지는 詩이다.

이 詩는 원래 오언절구 3수로 된 연작시중 세 번째이다. 기다란 詩 제목에서 이 詩를 짓게 된 배경이 나타나 있는데, “저녁 무렵에 백운계로부터(晩自白雲溪), 다시 서강 입구에 이르러(復至西岡口), 잠시 소나무 아래 누워서 지었다.(少臥松陰下作)”라고 하였다.
白雲溪백운계는 지금의 포천에서 화천으로 넘어가는 개울을 말하며, 작자가 한때 은거한 곳이라 한다.

땅위에 구불구불 용틀임하면서 불거져 솟아오른 소나무 뿌리위에 걸터앉아 글을 읽었다. 글을 읽으며 독서삼매경에 빠져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는데, 그때 책 위에 솔방울이 굴러 떨어진다.
눈을 돌려보니 어느덧 사방은 고요하고 어둠이 다가오는 듯하다. 이제 돌아가라는 신호인가 보다 하면서 지팡이를 짚고 길을 나섰다. 어느새 저녁이 다가와 저 멀리 고갯마루 위에는 흰 구름 장막이 반쯤이나 내려 덮이고 있었다.

이 詩를 조용히 읽고 있노라면, 마치 당나라의 王維왕유나 진나라의 陶潛도잠의 詩를 읽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데, 담백하고도 고요함이 전해져온다.

이러한 詩를 흔히 神韻신운이 있다고 하는데, 불가에서 말하는 선의 경지에 들어있는 느낌을 주는 詩라고 하겠다. 즉 속세의 티끌에서 완전히 벗어난 禪趣선취를 느낄 수 있으며, 閑寂한적에서 군더더기를 벗겨내고 맑음만 남겨 두었기에 신운이 감돈다고 한다.

그의 스승 박지원은 이서구를 일러 “心靈심령이 일찍부터 열려, 슬기로운 식견이 구슬과 같다.”고 했다.

한편, 연작시 중 나머지 두 편은 다음과 같다.

(1)

家近碧溪頭(가근벽계두) 집이 푸른 시냇가에 가까우니
日夕溪風急(일석계풍급) 아침저녁으로 시내바람이 급하다.
脩林不逢人(수림불봉인) 긴 수풀에 만나는 사람 없고
水田鷺影立(수전로영립) 논바닥에는 백로 그림자만 서있다.

* 碧溪頭 벽계두(푸른 시냇가), 日夕 일석(아침저녁/저녁때), 溪風急 계풍급(시내바람이 급하다), 脩林 수림(키가 큰 수림/긴 숲), 水田 수전(논), 鷺影 로영(해오라기 그림자)

(2)

時向返照中(시향반조중) 때는 지는 해가 되비치는 가운데
獨行靑山外(독행청산외) 홀로 푸른 산 밖을 거닌다.
鳴蟬晩無數(명선만무수) 우는 매미소리, 해지자 더 울어 대는데
隔林飛淸籟(격림비청뢰) 숲 너머에서 맑은 자연의 소리가 들려온다.

* 返照 반조(저녁 해 그림자/反影반영), 鳴蟬 명선(우는 매미), 隔林 격림(숲을 격하여/숲 너머), 淸籟 청뢰(맑은 자연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