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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舟圖(고기잡이 배 그림을 보고)
漁舟圖(고기잡이 배 그림을 보고) 어주도 高敬命(고경명) 蘆 洲 風 颭 雪 漫 空 갈대밭에 바람일고 눈은 허공 가득 흩날리는데 노주풍점설만공 沽 酒 歸 來 繫 短 篷 술 사러 갔다 돌아와 거룻배를 매어놓았다. 고주귀래계단봉 橫 笛 數 聲 江 月 白 두어 가락 피리 소리, 강위의 달빛은 훤한데 횡적수성강월백 宿 禽 飛 起 渚 烟 中 자던 새가 물가의 안개 속을 날아오른다. 숙금비기저연중 【 註釋 】蘆 로(갈대), 蘆洲 노주(갈대숲으로 덮인 물가), 颭 점(물결이 일다/바람이 살랑거리다), 漫 만(질펀하다/흩어지다), 沽 고(사고팔다/술을 팔다), 繫 계(매다), 短 단(짧다), 篷 봉(뜸:대․띠․부들 따위를 엮어 배나 수레 등에 차일로 쓰는 것/거룻배), 短篷 단봉(작은 거룻배를 의미), 橫 횡(가로), 笛 적(피리), 宿 숙(묵다/자다), 禽 금(날짐승), 渚 저(물가), 烟 연(연기) 【 作者 】高敬命고경명(1533 중종23～1592 선조25) : 조선중기의 문인이며 의병장이다. 본관은 장흥, 자는 而順이순, 호는 霽峰제봉 ․ 苔軒태헌이다. 1552년(명종7)진사가 되었으며, 1558년 식년 문과에 장원급제했다. 공조좌랑으로 기용되었다가 正言정언을 거쳐 사가독서하였다. 한때 파면되었다가 1581년(선조14)영암군수로 기용되었다. 1591년 동래부사로 있다가 서인이 제거될 때 파직되어 낙향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격문을 돌려 6,000여명의 의병을 담양에 모아 진용을 편성, 북상하여 금산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나중에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忠烈충렬이다. 문집에 ‘霽峰集’제봉집, 저서에 ‘遊瑞右錄’유서우록 등이 있다. 【 評說 】고기잡이 배 그림을 보고 이 詩는 그림을 보고 詩를 쓴 題畵詩제화시이다. 詩의 제목인 ‘漁舟圖’어주도는 아마 이러하였을 것이다. 가까이에는 초겨울 갈대가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며 늘어서 있고, 하늘 가득 하얀 눈이 흩날리고 있다. 그림 한쪽 귀퉁이 하늘에는 달이 걸려있고, 아래편 강물위에는 달이 비치고 있다. 옆으로 거룻배 한척이 매어있는데, 어슴푸레한 물안개 속에서 새 한마리가 날아오르고 있다. 그림에서 본 것처럼 詩를 이렇게 단순 평면적으로 재현한다면 별다른 감응이 없을 것이다. 단순한 평면적 구도를 생동감 있게 바꾸어 주는 것이 바로 그림에 붙인 詩이다. 그저 한쪽 귀퉁이에 그려진 거룻배는 의미가 없지만 배에 의미를 부여했다. 어부가 눈이 내려 흥이 일어났다. 흥이 일어나니 술이 필요한데, 이 거룻배를 타고 술을 사러갔다가 돌아와 매어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에다 그림으로 그릴 수 없는 청각적 요소인 피리소리를 넣었다. 적막한 포구에 피리소리가 들리면서 밤의 정적을 깨고 있다. 그림에서는 휘영청 밝은 달만 있지만 詩를 통해서 피리소리를 듣게 함으로써 그 흥취를 더했다. 그때 새 한 마리가 물안개 속으로 날아오르는데, 눈도 희고 달빛도 희니 자던 새가 눈이 부시어 놀라서 일어난 것일까? 아니면 풀 섶에 깃든 새들도 피리가락에 흥이 겨워 장단을 맞추느라고 날아오른 것일까? 제화시는 그림이 말하지 못했던 그 뜻(意)을 읽게 하고, 그림이 담아 낼 수 없는 소리(聲)를 듣게 한다. 그래서 고인들은 詩와 그림의 밀접한 관계를 “詩 가운데 그림이 있고(詩中有畵), 그림 가운데 詩가 있다(畵中有詩).”고 하였다. 작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16세기 호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제화시에서 대가다운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편, 傲霜孤節오상고절에도 시들지 않고 피어있는 국화를 보면서 작자가 지은 ‘黃白菊’황백국이라는 詩가 있다. 正色黃爲貴 본래는 황 국화가 귀하지만 정색황위귀 天姿白亦奇 하늘에서 타고난 맵시는 흰 국화도 기이하다. 천자백역기 世人看雖別 세상 사람들은 비록 황 국화와 백 국화를 구별하여 보지만 세인간수별 均是傲霜枝 황국이든 백국이든 모두 다 서리 속에서 피어있다네. 균시오상지 * 正色 정색(본래의 빛), 姿 자(맵시/모양), 奇 기(기이하다), 雖 수(비록), 別 별(나누다/구별), 均 균(고르다/같다), 傲 오(거만하다), 傲霜枝 오상지(서리에도 시들지 않고 있는 가지) 세상 사람들은 황국화가 귀하다, 백국화가 기이하다며 구별을 하고 있는데, 결국은 황국화나 백국화나 모두 다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 피고 있음을 강조하여 국화의 절개를 칭송하였다. 작자는 1591년 동래부사 벼슬에서 파직되어 낙향했다. 이듬해인 1592년 왜군이 침입해와 온 나라가 풍전등화의 형국이었다.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작자도 왜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때 쓴 檄文격문이 ‘馬上檄文’마상격문이다. “…호탕하고 용감한 자들은 제때에 시국을 바로잡아야 하나니 부질없이 앉아서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우리 백성들은 이 나라의 회복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마땅히 의기와 힘을 내서 앞장서야 할 것이다. 나의 진심을 토로하여 널리 고한다.” 이 고경명의 ‘마상격문’은 흔히 최치원의 ‘토황소격문’, 제갈량의 ‘출사표’에 비견할 정도로 유명하다. 금산싸움에서 고경명과 그의 아들 고인후가 장렬히 전사하였으며, 나중에 진주성 싸움에서 그의 아들 고종후도 순절했다. 나라를 위해 지도층으로서 그 의무를 다한 명문가다운 면모는 영세토록 후세에 귀감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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