訪曺雲伯 조운백을 찾아서
방조운백

                                                                    朴 淳(박 순)


醉 睡 仙 家 覺 後 疑 신선의 집에서 취해서 든 잠, 깨고 나니 어디냐 싶고
취수선가각후의

白 雲 平 壑 月 沈 時 흰 구름 덮인 산골짜기에 달이 지려고 하는 때였다.
백운평학월침시

翛 然 獨 出 脩 林 外 재빨리 홀로 긴 숲 밖으로 나오니
소연독출수림외

石 逕 笻 音 宿 鳥 知 돌길에 지팡이 소리, 자던 새가 알아채는구나!
석경공음숙조지


【 註釋 】曺雲伯 조운백(이름은 俊龍준용/운백은 호), 醉睡 취수(술에 취하여 잠들다), 仙家 선가(신선이 사는 집/조운백의 집을 미화하여 지칭), 壑 학(골/산골짜기), 白雲平壑 백운평학(흰 구름이 골짜기를 평평히 메우고 있는 모양), 沈 침(잠기다), 月沈時 월침시(달이 잠기는 새벽녘), 翛 소(날개 찢어지다/빠른 모양), 翛然 소연(재빠른 모양/사물에 구애되지 않는 모양), 翛然而往 소연이왕(홀연히 떠나가다), 脩 수(포․육포/길다/닦다), 脩林 수림(긴 숲), 逕 경(좁은 길/지름길), 笻 공(지팡이/대 이름), 笻音 공음(지팡이를 짚는 소리), 宿 숙(잘다), 宿鳥 숙조(자는 새)

【 構成 및 韻律 】7언 絶句로 仄起式측기식이며, 韻字는 平聲 ‘支’ 韻 으로 ‘疑 ․ 時 ․ 知’이다.

【 作者 】朴淳박순(1523 중종17년～1589 선조22년) : 조선 중기의 상신이며 학자이다. 전남 나주 태생이며, 字는 和淑화숙, 호는 思庵사암이고, 본관은 충주이다. 서경덕의 문인으로 명종 8년에 장원급제하고, 대제학 ․ 영의정 등을 역임하였고, 영의정으로 14년 재임하였다. 이이 ․ 성혼을 편들다 서인으로 지목되어 탄핵을 받고 영평 白雲山백운산에 은거한 적이 있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저서에 思庵集사암집이 있다.

【 評說 】 조운백을 찾아서
박순이 젊은 날 동인과 서인의 당쟁이 심해지는 속에서 탄핵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나 잠시 영평 백운산에 은거한 적이 있었다. 이때 백운산 산자락 이웃 기슭인 白雲洞백운동에 은거하고 있는 친구 曺俊龍조준룡(字雲伯)을 찾아가서 쓴 詩이다.
신선의 집과 같은 친구의 은거지를 찾아가서 같이 술을 마시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에 잠이 깨어 홀로 지팡이를 짚고 돌길을 나섰다. 잠자던 새가 지팡이 소리에 놀라 깨는 정경을 한 폭의 수채화 같이 맑게 그려내고 있는데, 俗氣속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이 詩가 바로 그의 詩名시명을 가장 떨치게 한 작품이며, 그의 詩 또한 唐詩당시에 근접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의 ‘宿鳥知’숙조지(잠자던 새가 알다)가 하도 유명하여 박순의 별명이 ‘朴宿鳥’박숙조니 ‘宿鳥知先生’숙조지선생이니 하는 별호를 얻게 되었으며, 후대의 시화집에 자주 화제로 등장하는 이름난 작품이다.

위 詩는 두 수의 연작시중 두번째인데, 그 첫 번째 詩를 소개한다.

靑山獨訪考槃來 푸른 산에 숨어사는 벗을 홀로 찾아와서
청산독방고반래

袖拂秋霞坐石苔 가을 노을 소매로 털며, 이끼 낀 바위에 앉는다.
수불추하좌석태

共醉濁醪眠月下 함께 탁주에 취하여 가을 달 아래 잠드는데
공취탁료면월하

鶴飜松露滴空杯 학의 뒤척임에 솔 이슬이 빈 술잔에 떨어진다.
학번송로적공배

* 考槃 고반(은둔하여 속세와 담을 쌓고 숨어사는 사람), 袖拂 수불(옷소매를 툴툴 털어내는 것), 濁醪 탁료(막걸리), 滴空杯 적공배(빈 잔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

사실 우리漢詩한시는 고려조 시학이 융성해지면서 송나라 蘇軾소식으로 대표되는 宋詩學송시학의 영향아래 발전해 왔다.

조선 초에 杜詩諺解두시언해를 간행한 후 일부 식자들은 唐詩당시를 배웠으나 조선 중기 선조 때에 와서야 비로소 당시를 배우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宋詩송시 일변도에서 당시로 바꾸어 놓은 선구자가 바로 朴淳박순이라고 하며, 당시를 모범으로 삼을 것을 주장하여 후대에 영향을 끼쳤던 사람이다.

이때 당시를 제대로 배운 시인으로 박순 ․ 최경창 ․ 백광훈 ․ 이달 ․ 이순인 등이다. 이들 중 특히 최경창 ․ 백광훈 ․ 이달 등이 당시에 逼眞핍진한 詩를 잘 지어 三唐詩人삼당시인이라 부른다.
박순은 삼당시인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달에게 당시를 배우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이 장면이 허균의 ‘蓀谷山人傳’손곡(이달의 호)산인전에 들어 있는데, “시의 길은 마땅히 당을 정도로 삼아야 하며(詩道當以爲唐爲正), 자첨(소동파)이 비록 호방하나(子瞻雖豪放), 이미 이류로 떨어졌다(已落第二義也).” 고 하면서 시렁위에서 이백의 악부와 歌吟가음, 왕유와 맹호연의 근체시를 꺼내 주었다.
이를 받아든 이달은 깜짝 놀라면서 詩의 바른 법도가 이에 있음을 알고 마침내 옛날 배웠던 것을 모두 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