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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中(산 속에서)
山中(산 속에서) 산중 李珥 (이이) 採 藥 忽 迷 路 약을 캐다가 갑자기 길을 잃었는데 채약홀미로 千 峰 秋 葉 裏 수많은 봉우리 가을 잎 속에 있다. 천봉추엽리 山 僧 汲 水 歸 산승은 물을 길러 돌아가는데 산승급수귀 林 末 茶 烟 起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 피어오른다. 임말다연기 【 註釋 】採 채(캐다), 採藥 채약(약초를 캐다), 忽 홀(갑자기), 迷 미(미혹하다/길을 잃고 헤매다), 峰 봉(봉우리), 葉 엽(잎), 裏 리(속/안), 僧 승(중), 汲 급(물을 긷다), 歸 귀(돌아가다), 末 말(끝/나무 끝), 茶 다(차), 烟 연(연기=煙), 茶烟 차연(차 달이는 연기), 起 기(일어나다) 【 作者 】李珥이이(1536 중종31～1584 선조17) :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문신이다. 본관은 德水덕수이고 호는 栗谷율곡이며 자는 叔獻숙헌이다. 사헌부 감찰을 지낸 이원수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신사임당이다. 동호문답 ․ 만언봉사 ․ 성학집요 등을 지어 국정전반에 관한 개혁안을 왕에게 제시하였다. 벼슬은 대제학 ․ 각조의 판서 등을 역임했다. 해주 고산에 은거, 학문과 제자양성에 힘썼다. 기호학파를 창시한 조선 유학계의 巨儒거유로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었다. 문장으로도 이름을 떨쳐 송익필 ․ 최립 등과 함께 ‘八文章’팔문장으로 호칭되었다. 【 評說 】 약초 캐다가 길을 잃다 단풍이 떨어져 낙엽이 수북이 쌓인 산속에서 약초를 캐다가 길을 잃은 약초꾼의 이야기를 그린 詩이다. 詩의 뜻(詩情)을 그림을 그리는 마음(畵意)으로 전개한 詩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망태기를 메고 곡괭이를 들고 낙엽이 쌓인 가을 산에 올라 이산 저산 옮겨 다니면서 정신없이 약초를 캐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해도 뉘엿뉘엿 서산에 지려고 하고, 자신이 올라온 길이 어디인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약초꾼은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 낭패감에 사로잡혀 있는데, 문득 저 건너편 숲 사이로 사람 그림자 하나가 까마득히 들어온다. 반가움에 자세히 살펴보니 스님 한 분이 물동이에 물을 길러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스님의 모습이 숲 사이로 사라졌다. 약초꾼은 스님이 사라진 숲 속 어딘가에 암자가 있겠지 하면서 그곳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그때 나무숲 끝에서 실오라기 같은 푸른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약초꾼은 다시 길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몸과 마음이 다시 가벼워지고, 저곳 연기 솟아오르는 절에 가면 차라도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다는 기대감에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한편, 율곡이 남긴 詩는 다양하여 도학의 성취를 보여주는 理學이학에 관한 것도 있지만, 개인의 정감을 노래한 서정시와 경물의 흥취를 읊은 서경시들도 많이 남아있다. 詩를 읊음으로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 存性존성에 도움이 된다하여 詩의 가치를 인정하고, 직접 중국의 한시 중 뛰어난 작품을 선별하여 ‘精言妙選’정언묘선이라는 책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는 율곡선생이 여덟 살 때 지은 작품으로 알려진 ‘花石亭’화석정이란 오언율시를 소개한다.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저물었는데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시인의 시정은 끝이 없어라.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멀리서 흘러오는 강물은 하늘과 이어져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서리 맞은 단풍잎은 해를 향해 불타오른다. 山吐孤輪月(산토고윤월) 산에는 외로운 둥근 달이 솟아오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강에는 만 리 바람을 머금었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변방의 기러기는 어느 곳으로 날아가는가?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기러기 울음소리 저문 구름 속으로 끊어진다. * 花石亭 화석정(경기 파주군 파평면 율곡리의 임진강 가에 있는 정자), 林亭 임정(숲 속에 있는 정자), 騷客 소객(시인), 孤輪月고윤월(외로운 둥근달), 塞鴻 새홍(변새에서 날아온 기러기), 聲斷 성단(소리가 끊어지다) 임진강 화석정에서 바라보는 만추의 정경인데, 전반 네 구절은 일몰전의 경치이고, 후반 네 구절은 일몰 후의 경치를 그렸다. 늦가을의 푸른 하늘과 강, 붉은 단풍, 둥근 달, 맑은 바람, 날아가는 기러기 등의 풍경이 마치 여덟 폭 병풍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다. 혹자들은 마지막 구절인 ‘저무는 구름 속으로 기러기 울음소리 끊어진다.’(聲斷暮雲中)를 가리켜 短命句단명구라고도 한다. 호사가들의 주장일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율곡은 우리나이로 49세에 죽었으니 장수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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