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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金居士野居(김거사 은거지를 방문하다)
訪金居士野居(김거사 은거지를 방문하다) 방김거사야거 鄭道傳(정도전) 秋 雲 漠 漠 四 山 空 가을 구름 아득하고 사방 산은 텅 비었는데 추운막막사산공 落 葉 無 聲 滿 地 紅 소리 없이 지는 낙엽이 땅에 가득 붉구나. 낙엽무성만지홍 立 馬 溪 邊 問 歸 路 시냇가에 말을 세우고 돌아갈 길을 묻노라니 입마계변문귀로 不 知 身 在 畵 圖 中 이 몸이 그림 속에 있는 줄을 알지 못했네. 부지신재화도중 【 註釋 】漠 막(사막/조용하다), 漠漠 막막(너르고 멀어서 아득하다), 四山空 사산공(사방의 산이 비다/인적이 없음), 滿地紅 만지홍(땅에 붉은 낙엽이 져서 가득 붉음), 立馬 입마(가는 말을 세우다), 問歸路 문귀로(돌아가는 길을 묻다), 畵圖中 화도중(그림의 화면 속) 【 作者 】鄭道傳정도전(1342?～1398 태조7) : 고려 말, 조선초기의 학자이며 문신이다. 자는 宗之종지, 호는 三峰삼봉이고, 고려 말에 고관을 지내다가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을 개국하고, 개국 일등 공신으로 권력을 손에 쥐었다. 한양 천도를 주도했고, 斥佛崇儒척불숭유를 국시로 삼아 유학을 발전시켰다.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거의 혼자 힘으로 마련했다.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태종)에게 피살되었다. 유학의 대가로 시문에 능했으며 저서에 ‘삼봉집’이 있고, 고려사를 편찬하였으며, ‘정동방곡’ 등 여러 편의 악장을 남겼다. 시호는 文憲문헌이다. 【 評說 】 내 몸이 그림 속에 있다네! 가을 구름이 하늘에 고루 깔리고, 가을이 깊어 나뭇잎마저 떨어져 사방이 텅 빈 듯한 다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로 시작된다. 그러나 자세히 다가가 보면 황량한 산기슭과 바닥에는 소리 없이 지는 낙엽이 온 땅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늦가을의 경치를 그림처럼 스케치해 놓았다. 가을구름과 텅 빈 산이라는 을씨년스러운 원경에 단풍잎으로 땅바닥이 붉게 물든 근경이 대조를 이루며 仙境선경을 담은 한 폭의 그림이 이루어졌다. 이때 작자가 시냇가에 말을 세우며 그림 속에 등장한다. 아름다운 산수화 같은 경치 속에서 넋을 놓고 풍경을 감상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길을 묻는데, 그때서야 이곳이 그림속의 선경에 와있음을 깨달았다고 할까? 허균은 ‘국조시산’에서 “玲瓏圓轉영롱원전하여 넉넉히 唐詩당시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했으며, 이야말로 ‘詩 가운데 그림이 있다’(詩中有畵)는 것을 이를 두고 이른다 하겠다. 한편, 정도전은 젊어서 출사하기 전에는 영주와 안동일대에서 생활했으며, 집에 쌓아 놓은 재산이 없어 처자는 추위와 굶주림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외조모 김씨가 승려와 사노의 처 사이에 태어났기에 출세에 신분적 제약을 받았다. 막역한 벗들로부터 천출이라 모욕을 당하기도 했고, 관리 임명장을 받는데 방해가 되어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우왕 원년(1375년) 성균관 사예로 있던 삼십대 초반의 정도전은 우왕을 옹립한 이인임 일파를 반대하다가 전라도 나주 인근으로 유배되었다. 3년 만에 풀려나 개경으로 가지 못하고 고향과 단양 인근에 살았다. 1382년 무렵 서울로 올라와 삼각산 아래 초막을 짓고 三峰齋삼봉재를 열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때 은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山中’산중이라는 詩로 나타냈다. 弊業三峰下(폐업삼봉하) 삼봉 아래서 공부를 그만두고 歸來松逕秋(귀래송경추) 소나무 길 가을철에 돌아왔다. 家貧妨養疾(가빈방양질) 집이 가난하여 병 요양하기도 어렵고 心靜足忘憂(심정족망우) 마음이 고요하여 근심 잊기 족하다. 護竹開迂徑(호죽개우경) 대나무를 보호하느라 길을 멀리 내었고 憐山起小樓(연산기소루) 산을 아껴 누각을 작게 세웠다. 隣僧來問字(인승래문자) 이웃 중이 문자를 물으러 와 盡日爲相留(진일위상류) 하루 종일 같이 지냈다. 5 ․ 6구절 “대나무를 보호하느라 길을 멀리 내었고(護竹開迂徑), 산을 아껴 누각을 작게 세웠다(憐山起小樓)”에서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은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은자로 살아가던 정도전을 시기하여 권세가가 이 집을 헐어버려 부평으로 이주하였고, 이곳도 어느 권세가가 별장을 만든다고 또 헐어 버렸다. 다시 김포로 옮겼다고 한다. 계속되는 압박과 불우한 생활 끝에 정도전은 중대한 결단을 하고 우왕 9년(1383)함흥으로 이성계를 찾아갔다. 이후 정도전은 혁명가로 조선 건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혁명가로 새로 태어난 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1392년 조선을 세우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해 겨울 문하시랑찬성사라는 높은 직함을 가지고 명나라에 갔다. 이듬해 정월 초하룻날 조회에 참석하고 그 감회를 호기롭게 詩로 읊었는데, 제목이 ‘계유년 정월 초하루 봉천전에서 읊다’(癸酉正朝奉天殿口號)라는 詩이다. 春隨細雨渡天津 봄은 가랑비를 따라 천진교를 건너오는데 춘수세우도천진 太液池邊柳色新 태액지 연못가에는 버들 빛이 새롭다. 태액지변유색신 滿帽宮花霑錫宴 모자 가득 궁화를 꽂고 잔치를 즐겼는데 만모궁화점석연 金吾不問醉歸人 금오군은 취해 돌아가는 사람을 묻지도 않는다. 금오불문취귀인 * 口號구호 : 詩 양식의 하나로 글자를 적지 않고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읊는 詩를 말함 조선을 대표해 사신으로 와 명 태조가 베푼 잔치에서 거나하게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명나라 궁궐을 지키는 금오군의 창칼 앞을 지나가면서도 豪氣호기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궁화를 모자에 꽂고 거나하게 취하여 궁궐 문을 나서는 자신의 모습이 대궐을 무대로 하여 중심에 서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세운 정도전은 그 후 권력다툼 속에서 이방원에게 피살되었다. 권력을 잡은 자들은 그를 역적으로 몰았고, 출신이 한미한 집안에서 나온 倫紀윤기없는 인물이라고 모략하는가 하면 서얼 출신을 등용하지 못하게 하는 명분으로 삼았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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