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전 제 3 부 예수 그리스도와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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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문 : 육화하신 말씀(Verbum)의 일치 방식

1.  본성이란 고유한 작용원리로서 생성의 활동적 과정 중에 있는 어떤 사물의 본질을 뜻한다.  그런데 두 가지가 새로운 어떤 사물을 형성할 경우, 본래의 두 가지 요소가 그 자체 안에 온전히 남아 있으면서 서로 일치하여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외적 형상을 통한 것이 아니라면, 새로운 것일 수 없다.  마치 쌓아올린 벽돌들이 성벽을 이루는 것과 같다.  어떻든 말씀의 인성(人性)과의 일치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우유적 일치(偶有的一致)는, 진정한 일치성이 없는, 인위적인 일치이기 때문이다.  한편 그 자체로 완전한 두 요소들이 서로 일치한다는 것은 상호 변화하면서 하나의 결합을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런 말씀의 일치와 견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신성은 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결합 속에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 이전의 두 가지 요소와는 특별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 결합 안에서 나타나는 그 결과는 요소들에 의해서 달라 진다.  사실상 결합 요소들 사이에는 근접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성과 인성 사이의 그 간격은 무한하다.  마치 육체와 영혼이 인성을 이루는 것처럼 불완전한 두 요소는 상호 보완을 위해 결합하는 것이다.  말씀의 일치는 그런 일치일 수 없다.  그분 안에는 신성과 인성이 완전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성이 창조된 하나의 자연의 부분이나 형상, 무엇보다도 인간의 육체적인 것일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신성의 상태이거나 인성의 상태는 아닐 것이다.  그처럼 말씀의 인성과의 일치는 어떤 본성의 일치일 것이라는 견해는 배제된다.

2.  말씀의 일치는 오히려 위격(位格, persona)안에서의 일치다.  본성이 어떤 종(種)의 본질을 의미한다면 위격은 종의 자립적 개별성을 뜻한다.  위격에 고유한 그 무엇이 된다는 것은 그 본성에 속하든가 또는 속하지 않든가에 상관없이 그 위격과 일치하고 있음을 말한다.  말씀의 인성과의 일치는 말씀의 위격 안에서의 일치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음을 뜻한다.

3.  품격(品格), 즉 본체는 위격과 동일하다.  단지 그 차이점은 위격이 그 지적 본성의 고유한 본체로 존재하는 가운데 어떤 권위가 드러나고, 그럼으로써 그 품위에 마땅한 명칭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인성과의 일치는 위격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품격 안에서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구별되어 있지 않는 것을 실제적으로 구별하는 셈이 되고, 또 그런 일치는 친밀한 것이 되지 못하며 단지 외적일 뿐이기 때문이다.  더욱 곤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의 품격과 위격을 구별하면서 말씀에게 속성을 부여하지 않고 인간에 속하는 고유한 다른 것들, 즉 출생, 수난, 죽음 등의 속성만을 부여하려는 태도다.  이것이 네스토리우스(Nestorius)의 오류다.

4.  육화 이후 말씀의 위격은 그 자체로 단순하다.  그러나 그 존립방식에 있어서 신성과 인성 안에 존립하는 까닭에 두 본성의 합일(合一)이라고 할 수 있다.

5.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인간과 동일한 종(種)의 인간이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형상으로서의 영혼과 질료(質料)로서의 육체가 인성을 이루기 위하여 서로 일치하고 있다.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육체와 결합을 이루는 영혼이 있었다.  한편 다른 인간에게 있어서는 영혼과 육체가 일치하여 한 인격을 이루는 반면에 그리스도에게서는 영혼과 육체가 인격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보다 높은 차원의 위격, 즉 말씀의 신적 위격 안에서의 일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6.  본성 안에서가 아닌 말쓴의 일치를 본질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말씀의 일치가 우유적 일치는 더 더욱 아니다.  위격 안에서의 일치이다.  다시 말해서 본성 안에서의 위격의 일치와 더불어 품격적 일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네스토리우스(Nestorius)는 다음과 같은 오류를 범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아들(Filius Dei)이라는 위격과 인간의 아들(Filius hominis)이라는 위격을 구별하면서 품위와 칭호의 상통과 더불어 거주적 일치, 정적 일치, 작용적 일치를 주장한 것이다.  이런 일치는 위격적인 것이 아니라 우유적 일치인 것이다.  더 큰 실수는 위격의 일치를 존중하고자 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고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영혼과 육체가 하나의 습성처럼 수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더욱 더 우유적 일치를 말해 준다.

7.  인성의 신성과의 일치는 창조된 무엇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고, 영원한 것이 아닌 모든 것은, 즉 시간 안에 이루어진 모든 것은 창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변하는 분이 아니며, 하느님과 관계를 이루는 데서 변화하는 것은 인성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발생하는 관계는 하느님에게서 외적인 것이다.

8.  진정한 일치는 취(取)하는 것이 아니다.  신성과 인성의 일치는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 수렴되기 때문에 신성과 인성 사이의 하나의 관계 안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 관계는 어떤 변화에 의존하고, 그런 변화는 어떤 행위 안에서 한편으로 능동적 행위를, 다른 한편으로 수동적 행위를 이룬다.  일치는 관계(relatio)와 관련되고 취함은 행위와 관련된다.  그러므로 인성은 일치되고 취해지는 것이지만, 신성은 일치되는 것이긴 해도 취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9.  품격적 일치는 일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데서 일치의 큰 부분이지만, 일치된 본성에 있어서 일치의 큰 부분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이 본성들은 거기에서 구별되어 남아 있고, 또 그들 사이의 간격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10.  그리스도 안에서 두 가지의 본성의 일치는 은총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의 뜻에 의해 거저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고, 또 인성이 어떤 선행적(先行的) 공로를 지니고 있지 않는 까닭에도 거저 베풀어진 선물인 것이다.

11.  사실상 육화 이전에 인간으로 선재(先在)하지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 편에서의 어떤 선행적 공로들은 있을 수 없었다.  어떤 인간들도 정의의 공로를 지니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의를 공로가 되게 하는 것은 은총의 결과이고, 은총의 시작은 바로 육화를 통해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의 성인들이 육화의 공로를 입게 되는 것은 정의의 차원이 아니라 혜택의 차원에서다.

12.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은, 일치의 은총이든지 또는 상존 은총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자연스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은총이 인간 본성을 이루고 있는 원리들로 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본성 안에 원인이 되고 있는 신 본성으로 부터 유래한다.  출생의 순간, 즉 존재하기 시작한 첫 순간부터 은총을 지니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