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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는 언제 걷힐는지? -4-
축구를 하다 다친 애들을 정성들여 간호해주는 그녀가 너무 고맙게만 여겨졌다. 그래서 양호실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시 대항 예선 시합이 있던 날 양호선생과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함께 나오다 일학년 담임인 여선생과 마주친 일이 있었다. 그 후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말았다. 학교에선 축구부를 해체하려 했고 탈퇴를 종용했다. 익주는 교장실에 불려갔다. 그는 험악한 얼굴로 다그쳤다. "김 선생, 자네 왜 이러나? 소문은 또 뭔가. 양호선생과의 소문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진 않네만, 서명이 문제야. 체육선생이 축구에만 전념을 해야지 왜 쓸데 없는 일에 휘말리나? 김 선생 자질이 문제야. 그러니 이번 시합은 포기하게. 그리고 소문따위로 않도록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서 행동하게나. 난, 김 선생의 행동거지를 지켜보고 있겠네." "전 서명한 적이 없습니다.그리고 도교위에서 이미 대진표가 내려 온 실정입니다. 그래서 시합은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의 의욕이 대단합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선처해주십시오" "김 선생 답지 않게 왠 억지를 부리는 건가. 결성회에도 참석하고 거기서 서명까지 하고 이제와서 아니라면 도대체 김 선생 진의가 뭔가?" "저는 전교조 모임인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도중에 나왔고 서명도 다른 사람이---" "그렇담 김 선생의 말을 믿기로 하겠네만, 속히 탈퇴명부에 서명을하고 선수들을 인솔해가게." 교장실을 나온 그는 동료교사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강한 숫을 날리던 그의 튼튼한 다리가 엿가락처럼 맥없이 휘어지는 것 같았다. 온 전신의 힘이 내뿜는 담배 연기처럼 입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몸 하나 지탱하는 것 조차 힘이들었다. 이건 너무 가혹한, 자신에 대한 나락의 늪이었다. 익주는 분명 자신이 살아야 한다는 의욕, 아니 오기가 생겼다. 그들을 만나 이해시키고 탈퇴를 해야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총이 너무도 강하게 느껴져 견디기가 어려웠다. 이해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설득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은 탈퇴를 할 수가 없었다. 차 선생을 옹호하고 나서는 그들에게 자신을 합리화 시키기에는 그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소외당하는 것이 죽음 보다 더 무섭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에게 적대감을 갖기보다는 필연의 모순을 자쳐하고 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선생에게 자신이 자꾸만 초연해졌다. 그를 질타하기엔 이미 먼 감이 들었고,그가 받는 만큼의 죄장감도 어쩌면 같은 맥락에서 받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의 역겹던 감정을 정리하게 되자 더욱 더 밀짚모자를 깊이 눌러 썼다.종일 달아오르던 해가 기진맥진하여 산등성이 너머로 굴러 떨어질 때쯤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남은 과일 가운데서 다시 팔 수 없는 것은 따로 골라내었다. 버리기가 아까와 속이 곪은 수박은 도려내고 물러 터진 딸기는 씻어서 먹었다. 석진은 엄마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배가 볼록하도록 먹고는 밤새도록 죽는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엄마 나 죽어, 나 죽는단 말야!'하면서 토하고 싸고 방안을 설설 기며 가슴을 쥐어 뜯었다.그런 후로는 한여름에도 참외나 수박은 먹지 않았다. 익주는 멀리 바다위로 빼앗겼던 시선을 돌려 이 씨와 정 씨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주로 정부의 잘못을 질타하고 있었다. 매점매석도 기관을 낀 수입상과 돈푼이나 만지는 재력가의 뒷거래로 공공연히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 동안 바다에서 고기잡는 어부라면 무지막지한 뱃놈으로 치부해버린 자신이 부그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똑바로 그들을 응시할 수가 없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진하게 느껴지는 인간애에 대한 감정은 자신을 교화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비굴하지 않고 남을 용서할 줄 아는, 그러면서 가식없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 그는 허탈하기만 했다. 여지것껏 자신을 숨기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뒷통수를 얻어 맞은 듯이 뒷골이 뻐근해왔다. 잔 놓고 고사지내냐면서 정 씨가 조막 손으로 반쯤 남은 술잔을 가리켰다. 익주는 잔을 비웠다. 다시 창가로 와서 돌아서서 담배를 피웠다. 그들 앞에서 줄은 받아 마셨지만 담배 만큼은 앞에서 피울 수가 없었다. 부모같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사라는 명분 때문이었다. 담배를 깊이 빨아 창밖으로 길게 내뿜었다. 밖은 칙칙한 기운이 돌았다. 따개비같이 다닥다닥 붙은 지붕 위로 분기가 몰려왔다. 해직되던 날도 이렇게 안개는 유난히도 짙었다. 그때 축구부가 해체되어면서 휑뎅그렁한 운동장에서 선수들과 마지막 악수를 했다. '선생님 가지 말아요. 가면 안 돼요!'하는 그들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정든 학교를 떠나며 우승을 하던 애들의 장래가 걱정되었다. 그가 인솔해 간 팀이 예상 밖으로 선전했다. 그는 우승트로피를 받자마자 승리의 기븜도 느끼지 못한 채 피곤이 범벅된 선수들과 학교로 돌아왔다. 동료 교사들의 축하연에 참석하여 그들과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그들은 익주가 탈퇴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데 대해서 치하했다. 다 함께 전교조를 위하여 축배를 들었다. 출근을 하자마자 곧바로 교장실에 불려갔다. "김 선생, 이번에 고생이 많았소. 도교육청에서 우리학교 체육진흥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소. 또, 김 선생의 표창도 상신해놓았소. 속히 탈퇴를 하고 다음에 있을 시합을 위해 애들 훈련에만 전념하세요. 이런 배려도 다 유능한 김 선생의 장래를 위해서요." 그의 위해서라는 말에 모멸감만 더해왔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어림없는 수작이라고 김 선생은 치를 떨었다. 지원금은 뭐고 애들 훈련은 또 뭐란말인가 하는 감춰진 계략에 익주는 더 이상 놀아 날 수가 없다는 거북함을 느꼈다. "약속대로 이제부터 축구부를 맡질 않겠습니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 "허어 김 선생. 예산 부족이라 교육청에서 지원을 안 해주는 걸 낸들 어쩌겠나.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구!" 그의 해낙낙한 웃음소리를 애써 잊으려고 수업에만 전념했다. 결국 중징계에 회부되었다. "김 선생. 자네만은 그동안의 공도 있고 해서 징계로만 그치려 했는데 위에서 명단이 내려왔어. 탈퇴를 안 했더군, 난, 실망했네. 자네같이 유능한 체육교사가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거 말일세. 명단이 밝혀진 이상 곧 조치가 내려질 걸세. 다시 한 번 심사숙고 해보게. 구제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아 있을 테니까." "저는 서명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탈퇴를 합니까? 결과적으로는 서명했음을 인정하라는 말씀 밖에 더 됩니까?" "서명을 했건 안 했건 그게 중요한 게 아냐. 다만 유능한 체육교사의 자리를 잃게 되니 말일세. 머리가 좀 둔하군!" 머리가 둔하다는 말에 더 이상 대꾸조차 할 수가 없었다.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눈 앞이 캄캄해지고 현기증까지 일었다. 그가 체육진흥을 위한 속셈이 아니란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이렇게 비열한 수법으로 나오리란 짐작은 이미 한터였다. 오히려 익주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선수를 인솔해갔을 때 학교에선 예선 탈락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는 숙식비가 바닥이 나자 함께 온 양호 선생을 학교로 보내고 다음 날의 대진표를 받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는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날이 밝자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의 밝지 못한 표정이 아니더라도 학교의 무성의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애들을 운동장으로 보내고 그녀와 걸었다. 기와를 얹은 집들이 즐비한 신흥 주택가를 끼고 돌았다. 운동장이 저만치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안개보다 큰 는개같은 알맹이가 촘촘이 묻은 아카시아 이파리가 차갑게 얼굴을 스쳤다. 신문지를 깔고 그녀와 앉았다. "조 화연 선생님. 이번처럼 비애를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저 아래 저 애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래서 첫 시합에 오히려 패했으면 했었는데---.웃읍지요. 이제 애들 다칠걱정이 없으니 아침 드시고 곧바로 학교로 떠나세요. 애들에게는 꼭 이기라고 부담은 안 줄겁니다. " 계 속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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