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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1-
 눈사람 [短篇小說] -尹 在 龍- 천량들 찬머리 바람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듯 집 안 밖을 휘감아 돈다. 바람소리에 놀란 문풍지가 따르르륵 오뉴월 여치소리를 낸다. 탁 탁 ‥‥ 짝, 타닥‥‥ 싸라락‥‥ 묵은 상수리나무 갈잎들이 서말 댁 뒤꼍 장독가로 우수수 곤두박질 친다. 첫닭 울음소리에 잠을 놓친 서말 댁은 몸을 뒤척인다. 눈썹씨름을 해보지만 잠은 십리밖 망아지 물 건너 간 꼴이 됐다. 사방은 저승 잠에 취한 듯 고적한 기운만 감돈다. 우 우 ‥‥우 웅‥‥ 휘이‥‥ '애장산 공동묘지에서 혼백들의 신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심란하게 들려오는구려!' "오득보오‥‥" 또 부른다. 도대체 뉘댁 씨알머린지 양반 님 네는 아니네. 깜깜 오밤중에 남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살기가 실린걸 보면 분명 이승 사람은 아니다. 서말 댁은 손바닥으로 남편의 귀를 얼른 싸맸다. 사흘 전 밤 한식경. 수족을 놓친 반신 불구의 남편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뛰어나가다 마루에서 낙상한 것이다. "스말 댁‥‥‥" '올러러‥‥ 이번엔 나를‥‥' 육십갑자 넘어선 명줄은 남의 나이라고들 한다. 주눅들린 노인들한테만 들린다는 애장산 공동묘지 혼백들의 신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심란하게 들린다. 남편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갑자기 머리끝이 밥알 꼿꼿이 서듯 무섬증이 났다. 서말 댁은 남편의 코끝에다 귀를 갔다댔다. 가만가만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 보지만 어째 반응이 없다. "만석 아부지 자유‥‥?" 서말 댁은 남편의 귀에다 대고 나직이 불렀다. 양손가락으로 살점을 비틀 듯 꼬집었다. 평생 살을 비벼댄 남편의 몸에서 찬 기운이 돈다. 한참 만에야 숨소리가 살포시 들렸다간, 멈쳤다. 자식들도 없는 이 세간 중에 숨 줄이라도 놓으면 안될 일이다. 자식들이 지켜보지 않는 임종은 아무리 집이라 해도 객사나 다름이 없다. 살려야 한다. 서말 댁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섬돌짝처럼 써늘한 남편의 젖꼭지를 잘근잘근 물어 당겼다. 그리고 몸에 걸친 겉옷가지를 벗고는 남편의 가슴에다 몸을 실었다. "만석 아부지 무겁쥬? 으쩌것슈 나좋차구 암내짓 하는 거 아니니까 무겁드래두 조금치만 참어바유 얼릉 나뀌 줄탱께유" 서말 댁은 무안하고 창피스러운 자신의 몸짓을 감추어 볼 속셈으로 중얼댔다. "육십갑자를 삼줄로 옹매을 져 골백번을 가슴팍에다 묻어도 기집은 워쩔 수 없는 게 기집인가벼‥‥반송장을 끌어안고 있어도 이렇게 좋기만 허니‥‥" 두 내외만 있는 굴속 같은 방안에 꼭 누가 훔쳐보는 것만 같아 서말 댁은 이불을 뒤집어썼다. 서말 댁은 눈꺼풀을 질금 사려 감고는 두 팔로 남편의 등을 휘어 감았다 "그려 만석 아부지가 첫날밤 나를 요렇게 했다 조렇게 했다 노리개 다루듯 어디서 그런 짭짜란 요술을 배웠나 입술로 나에게 살랑살랑 입맞춤을 해주었지!" 서말 댁은 첫날밤의 일들을 사탕 바르듯 어름어름 기억을 더듬어가며 남편 몸에 든 한기를 빼내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쏟는다. 군불 지핀 구들장처럼 남편의 몸이 서서히 더워진다. "안돼 요것 가지군 장판 내가 나두룩 더 딮피야 돼‥‥‥" 서말 댁은 남편의 가슴에다 자신의 입김을 토해냈다. 웟 부분에는 열기가 돋는데 하체는 냉기가 가시지 않았다. 이불을 남편의 가슴팍까지 덮어주고는 손바닥으로 나무등걸 같은 다리에 자극을 주며 벼이삭 훑듯 쓸어 내린다. 하체가 더워지면서 온기가 돌았다. 빗장 질은 대문이 연실 덜컹댔다. "꼬끼우‥‥!" 두 해 닭이 운다. 길초 고분댕이 조릿대 집 장닭이다. "꼭겨어‥‥‥!" 고랑천 건너 밭 가운데 한뜰네 중닭이 마지못해 따라 운다. "저 집도 내일쯤이면 군산으로 이사를 가겠지‥‥‥" "꼬 꼭‥‥‥!" 모양도 안 갖춘 우씨네 수탉이 벼슬 티를 낸다고 사래 들린 소리로 신명을 내본다. "저 집은 오늘 중으로 이사를 간단다. 어제 낮 잠깐 들려 봤더니 우씨네 형제들이 사이좋게 우르르 들려들어 이삿짐을 암암히 챙겨놨다. 그나저나 우리는 언제나 저 집들처럼‥‥‥" "꼬 옹!" 은뜰네 씨암탉이 수탉대신 코 춤추듯 찔끔 운다. "저 집도 안즉‥‥‥" "닭구들도 시속의 흐름을 알아차렸는지 울음소리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그나저나 달구새끼들이 자 추는걸 보니 날이 벗겨질 때가 어지간히 됐나보네!" 남편이 끄응 하고 몸을 뒤척댔다. 서말 댁은 눈만 감았다 떴다 할 뿐 한 잠도 못 잤다. '싸아아‥‥' 천량들 찬 머리 바람이 쌀알 이는 소리를 내며 몰아친다. 빗장 지른 대문이 덜컹댄다. 꼭 사람이 두들기는 것만 같아 서말 댁은 귀를 바깥쪽으로 곤두세웠다. 바람이 잤는데도 대문이 덜컹댄다. 서말 댁은 찢어진 창호지 틈새로 들이치는 황소바람을 막고 있는 걸레 뭉치를 뽑아 들었다. 대문 쪽을 찬찬히 살폈으나 사람이 흔드는 기척 같지는 않다. 밖은 아직도 어둡다. 두 해 닭이 홰를 친 뒤끝이라 그런가 밤눈이 설지 않는 것이 뿌연 물체가 눈앞에 희끗희끗 날린다. 서말 댁은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러 대고는 다시 밖을 살폈다. 쌀뜨물을 부어 놓은 듯 땅바닥이 온통 하얗다. 눈이 온 모양이다. 입동을 재촉하는 실비가 양 이틀 새간에 품을 깰 만 큼 질척거렸다. 곡식 걷이 시샘바람이 아니라 눈을 몰고 오는 손돌바람 이였다. 매운바람이 눈 갈기를 일으키며 안팎을 휘젓고 다닌다. "오라는 서울 큰아들 만석이는 안 오고 달갑지 않은 눈바람이 찾아오다니‥‥" 서말 댁은 캄캄한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밖을 살폈다.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것이 뚜렷이 보인다. 서말 댁은 눈을 보니 심란하기만 했다. 마을사람들은 내일이면 타지로 떠난다고들 북새통을 놓는데 서말 댁은 이삿짐을 싸지도 못한 채 아들들이 올 날을 어림수로 흐릿한 눈알을 심지 삼아 이때나 저 때나 애장이 고개를 넘본다.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자만머리 없이 모시러 오겠다는 전화만 동백기름 바르듯 뻔질나게 왔지 실상 어느 자식하나 코빼기도 디밀지 않는다. 서말 댁은 그때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었다. 며느리들 앞에서 시아버지 사타구니에 기저귀 채우는 게 아닌데. 딸년들도 코를 싸매는 판에 며느리인들 오죽했으랴. 대문이 덜컹거리지 않고 이제는 안채로 밀리는 소리가 잊을 만 하면 삐거덕거린다. 컴컴하던 방안의 물체가 하나둘씩 뼈대를 드러낸다. 서말 댁은 잠시 눈을 부쳐 볼 요량으로 남편 옆에 모로 누워보지만 잠은 오지 않고 오만 잡스러운 생각이 골속에서 삼태기 돌려 삼듯이 틀어댄다. 잠결에 대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서말 댁은 퍼뜩 눈을 떴다. 설핏 잠이 든 사이에 밖이 환하게 밝았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중얼대는 사람 소리가 들렸다. 서말 댁은 찢어진 창호지 사이로 밖을 살폈다. "만석이 왔어‥‥‥?" 안채로 들어선 사내는 뒷돌 박씨 마을 이장이었다. 서말 댁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들은 척도 안하고 이장의 행동거지를 노려 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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