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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는 언제 걷힐는지? -5-
운동장에서 연습을 하는 애들을 가리키며 그는 말끝을 흐렸다. "아니에요. 이럴 수록 포기하지 마셔야 해요.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냉정히 생각 해보시고 판단하세요. 우선은 제가 마련해 온 돈이 있으니 이걸로 비용처리 하시고 나중에 교무주임께 청구해보세요. 교육청으로 부터 체육기금이 내려왔으니까요." 그녀의 강한 위로가 오히려 그에게는 허탈해지기만 했지만, 그럴 수록 그를 지탱하게 하는 저변의 욕구가 다시금 되살아 나는 듯 했다. 아이들에겐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 . 그러기에 익주는 분노하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려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애들이 문제라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먼데 시선을 던졌다. "애들이 생각 외로 선전을 하는데 이렇게 내버려 둘 수가 있는 건지! 조 선생님과의 소문과 전교조 명단을 빌미로 축구부를 해체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출전이 마지막이 될 것같군요. 지원금도 중단되고 학교 재정으로 더 이상 축구부를 운영해나갈 수가 없다는 이유지요." "그게 사실이라면 이해하기가 좀 곤란스럽군요.체육교사 자리까지 없애면서 회유를 하다니요?" "꼭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지만, 저에게도 문제는 있습니다. 너무 고자세니까요. 전교조 탈퇴를 종용받고도 응하지 않고 있으니 눈엣 가시가 아니겠습니까? 회유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봐야지요." "그렇다고 지원금까지?------" 그녀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드러내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전교조 가입문제나 탈퇴문제의 갈림 길에서 보여준 자신의 행적에 대해 과연 얼마나 떳떳했었느냐를 그녀 앞에서 끄집어 낼 수가 없었다. 다만, 탈퇴를 하지 않았다는 게 그에게는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아침 햇살이 이슬을 핥고 있는지 음산한 풀숲에서 물안개가 피어났다. 내려가는 길이 미끄러워 나뭇가지를 휘어잡자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녀는 내내 말이 없었다. 언덕을 내려왔다. 그녀는 애들을 바라보면서 전전을 당부했다 . 그리고 학교로 가겠다며 떠났다. 멀리서 후아나 소리가 들렸다. 창가에 서서 미동도 않는 익주를 보고 이 씨가 다그쳤다. "니미럴, 김 선상 뭘 그리 생각하고 있는 겨? 이리와 한 잔 받어. 젊은 놈이 몸사리기는. 사장은 수협장 만나러 군수협에 갔구먼. 늦을 거라 했네 " 술이 오르는지 말소리도 무지막지하고 덴덕스러웠다. 그들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냉수를 들이키듯 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리도 요란했지만 내뱉는 숨소리도 거칠었다. 원체 주량이 약한 익주는 귓볼에서 목언저리까지 불꽃이 피었다. 그들의 삶엔 비겁이거나 적의의 감정이 조금도 숨어있지 않는 것 같앗다. 거칠긴 하지만 탁 트인 행동 하나 하나가 활달했다.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도시인들에 비해 얼마나 인간적인 가를 절실히 느끼게 했다. 익주는 속이 울렁거렸다. 토할 건만 같았다. 밖을 나왔다. 찬 바람이 훅하고 불어왔다. 구토증이 더했다. 몇걸음 않되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덕장을 돌아 건너가 사장의 집의 안채이고 대문 옆에 시집간 사장 딸이 쓰던 별체가 나왔다. 사장부인은 별채를 익주 부부에게 내주었다. 아내는 처음에 명태 배따는 일을 하였는데 추운데 밖에서 고생한다며 살림을 맡기고 일체 어장일을 못하게 배려를 해주었다. 익주는 수금한 돈을 사장부인에게 전하고 건너와 아내가 차려 온 밥상을 받았다. "요즈음 명절을 앞두고 종합상사에서도 매점매석을 하는 모양이에요. 가격 폭등은 고사하고 출고를 안해서 형부가 수협장 만나러 갔어요. 근데 오늘 왜이리 늦었어요?" 서울서 시간이 좀 있길래 차 선생 좀 만나러 갔었다 그냥." "거긴 뭣댐에 갔어요? 그 사람 때문에 우리 식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아내는 차 선생 얘기만 꺼내도 싫어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 지난 일이라 더 이상은 그를 비난하지 않았지만 섭섭한 감정은 아직도 가슴 한켠에 도사리고 있었다. "당신은 뭔가 오해하고 있어. 그가 그일 때문에 고민하고 미안해 하고 있었어. 해직무효확인 소송을하고 다시 복직을 하라더군. 부인 도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구." "그건 말도 안돼요. 병주고 약주는 격이지요. 갖은 고생 다 하고 나니까 이제와서 복직을 운운해요. 일방적으로 도장까지 도용하고서 좀 뻔뻔스럽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당신은 ?" 너무 나무라지 말어. 어디 자신 만을 위한 일이었겠어. 그게 다 참교육을 위항 결성이었고 전국 교직원 모두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걸 당신도 잘 알면서 그래. 나도 지금와서 느끼는 건데 그 때 난 축구부 훈련을 핑게로 피했던 거야. 이건 떳떳치 못한 행동인줄 알면서도." "그렇지만, 그것으로 말아야지. 왜 싫다는 사람을 끌여들여 억지로 가입을 시켜 이고생을 시켜요? 이건 억지예요. 뭐 의리가 다뭐예요. 내가 살고 봐야지요." 그는 밥상을 물리고 아내의 손을 꼬옥 쥐었다. 걷어놓은 빨래를 접는 손이 거칠었다. 아내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간 너무 고생을 시켜서 미안했다. 파출부에다 남의 집 빨래도 갖다 빨아 식구들이 생활했다. "당신이 그간 나때문에 많은 고생 한거 다 알아. 배 한척 살때까지만 꾹 참자구. 그땐 나도 바다에 나갈거니까. " 아내가 시큰둥해하며 부엌으로 나가자 그는 길게 다리를 뻗고 누웠다. 반자에 누런 얼룩 무늬가 좀 더 커져있었다. 쥐란 놈이 또 오줌을 쌌군 하며 피로한 눈을 스스르 감았다. 아내의 설거지 소리가 멀어져만 갔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몰랐다. 눈을 뜨자 갈증에다 목까지 칼칼했다. 그는 점퍼의 깃을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동살이 잡히자 밤새 긴 해미가 몰리면서 친친한 바람이 하늘을 부풀리고 있었다. 마른 명태를 안주하여 술을 마시고 난 아침이면 으레 속이 칼칼했다. 그래도 소주엔 명태 만한 안주가 없었다. 어판장엘 나갔다. 그간 폭풍주의보가 내린 터라 배들이 출항을 못하여 조태나 망태가 없었다. 아침 해장국으로는 연안에서 잡힌 명태가 제격인데 구경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어판장을 나와 축항을 향해 걸었다. 아침에 폭풍주의보가 해제는 되었지만 아직도 파도가 거셌다. 굼뜬 파도가 항에 떠있는 배를 향해 달려들었다. 배들은 서로 부딪치며 밴다지를 비벼댔다. 멀리 해안 경비초소의 철조망이 거미줄같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곳에서 이어진 축항은 비행시 활주로처럼 길게 뻗어 있었다. 방파제를 때리고 치솟는 물살에 휩쓸릴 것만 같았다. 그는 걸으며 생각했다. 이제 내가 가야할 길은 어딘가를 ?---, 복직을 위해 여길 떠나야 할 지? 아니면 바다와 함께?---. 시멘트로 짓이겨 바른 축항의 가장자리에 우끼가 몰려 떠있고, 바닥에 단풍잎 같은 불가사리가 좍 깔려 있었다. 이놈들은 어류와 패류등의 유용수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며 번식력도 어마어마하다는 불가사의한 동물이라고 학교에서 배웠었다. 배가 정박해있는 어항에는고지랑 물이 누런 이끼를 쓸고 있었다. 깡통. 비닐 팩. 스치로폴.막대기가 쓸려와 콜타르 기름에 얼룩져 일렁거렸다. 이물마스트처럼 밝게 비춰주던 등대가 희세 변해갔다. 출항을 하는 배들의 후아나 소리가 요란했다. 시커먼 물굽이 하얗게 뱃전에 부숴졌다. 기장살을 털며 가는 배들은 돌진하는 탱크처럼 앞으로 앞으로 돌진햇다. 그는 막걸리같이 텁텁하고 북어살같이 찝질한 바닷바람에 머리칼을 쓸었다. '바다도 흉년이여! 머구리가 캐가제---' 구레나룻 이 씨나 조막손이 정 씨도 한 세상을 뜬금 없이 살기로 작정한 듯 세상을 초월한 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이 불현듯이 솟구쳤다. '속상하고 울화가 치밀 땐 바다가 감정을 잠재워주지. 바다 한 가운데선 뭍에서의 잡다한 생각을 싹 가시게하고 가슴을 확 트이게 할 테니까 말이야!' 그들이 하던 말들을 되새기면서 해미가 걷할 날이 올 거란 생각에 자꾸만 걸었다. 물보라를 치며 축항에 달겨드는 흰 거품이 이내 물살에 쓸려갔다. 부숴진 잔해가 담배 연기를 토해내는 입속으로 튀어 들어왔다. 돌아 가는 길은 아직도 친친한 해미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바지주머니에서 손을 빼내어 바닷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해미는 언제 걷힐는지?" 라고------. -끝- *****한 번에 실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여 5회 연재를 한 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그간 졸작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뒤늦게 나마 모든 분들께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primula 배상 2001. 01.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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