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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2-
"자두치 두루마기 만한 개오지같은 놈‥‥" "아무도 읎나아‥‥?" 이장은 봉당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신발 두 켤레를 냄새맡듯 벌렁코를 끙끙대며 기웃이 들여다본다. 방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채고는 턱 짓을 하며 목청을 높인다. "끼슈우‥웃" 찢어진 문 창호지 틈새로 밖을 살피고 있던 서말 댁은 방문을 탁 차며 왜장을 쳤다. "왜 그러슈우! " 서말 댁은 부리부리한 왕눈을 화잔등 만하게 켜들고 맷돌짝처럼 떡 벌어진 앞가슴을 흔들대며 풍뎅이 걸음걸이로 마루 장을 탕하고 내 굴렀다. 기세가 등등하던 이장은 주눅든 얼굴로 서말 댁을 향해 머리를 비스듬히 꼬아 내린 채 더듬댔다. "엄동설한에 기체 일양만강 하신쥬우?" "청맹관 문자쓰듯 하네, 햇쌀거지두 못한 판에 믄눔의 얼어죽을 엄동탈영이윳, 왼팔뚝에 빨간 완장이나 두루믄 당신네 둘째형하구 견줄 만 하겠수다 그려! 그나저나 미안스러워 으쩌나 옛날처럼 빨간완장 믿구 미친개 날뛰듯 신명나는 호시절이 아니라서 그나저나 식전 댓바람부터 으쩐 일이대유 뒷돌 박씬지 뒤죽 박씬지 이장님 반길 사람 읎는 이 집에‥‥‥" "저 어‥‥" 이장은 코를 땅에 닿도록 고개를 떨군 채 말끝을 흐렸다. "오득보 으른께서는 근자에 와서 글력이 확 피셨는주우?" "육신이 불편한 남에 으른 함자를 코끝에 달구 난리슈 그리구 근력이야 핀지 오래주우‥‥ 조상이 물려준 터전 잘못 판 죄로 땅서리를 맞고 반신불구가 돼서 그렇지. 입은 삐뚤어져도 말이야 바로 하랬다구 나라에다 반 강제로 땅판 죄밖에 읎는 우리네가 땅서리를 맞을게 아니라 과외 돈 챙길 욕심으루 땅팔라구 이간질하며 시류에 장단 맞춰 춤사위짓하는 아첨꾼들부터 곰배팔이가 돼야 쓰는 건데 말유‥‥" 서말 댁은 아픈 곳을 콕 찔렀다. 그 말에 머쓱해진 이장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수모를 모면해볼 심사로 땅바닥에 살짝 깔린 축축한 눈을 발바닥으로 문질러댄다. "식전 댓바람에 날 찾아온걸 보니 피치 못할 궁한 심속이 있는가 본데 어이 말해보슈" 서말 댁은 곱지 않은 눈매로 이장의 면상을 살폈다. "서울 사는 만석이는 안즉 안 왔나유?" "남의 자식 오든 안오든 왜 참견이슈 쥐띠생 동무두 아니믄서" 서말 댁의 눈언저리가 파르르 떤다. "일 다봤으믄 어여 가보슈! 만석아부지 기저구 갈아줘야 허니까" 서말 댁은 들으라는 투로 기저귀소리에 힘을 주었다. "저어‥‥" 이장은 선뜻 돌아갈 생각을 안하고 미적댔다. "또 할말 있슈?" "딴 게 아니라유 …… 만석엄니두 아시겠지만 조만 간에 물이 찬다는구먼유" "어디가유?" "어디긴유 이곳 자라실골이쥬" "올로로, 그일 때문에 식전 댓바람부터 온 거유 친절두 하셔라. 남의 영감 논두렁에다 태질할 때는 은제구 이제 와서 고양이 쥐 생각하듯 능치는 거유. 당신 웃대 삼행제분은 일정 때나 난세 중에나 시류를 타고 애꿎은 이웃 등쳐다 보령읍내 기생집에서 불알 긁다 한 시절을 보냈지만, 우리 같 은 무지랭이는 손톱발톱 제켜지도록 흙투성이나 긁었쥬. 늙으막에 어쩌다 눈먼 논두렁 정기를 잘못받구 좀 사나보다 했었는데 말유. 또, 댐 공사를 한다구 땅을 뺏겨 각설이 신세가 되어 자라실 골을 등질 망정, 혹 누가 알우 천량들 용왕님덕에 쌍가마 타구 공동묘지 애장이 고개에다 고대광실을 짓고 살지……! 이봐유 뒷돌 박씨. 나두 눈치코치 시속 쌈 싸먹듯 똥 속까지 꿰차고 있으니까 댁들이나 한 시절 찾아 가보슈. 우리 두 늙은이 물귀신 되지 않을 테니" 방문을 탁 닫고 들어간 서말 댁은 이장이 돌아가고 나서 한참만에 마루로 나섰다. 서말 댁은 어릿한 눈길로 천량들을 바라본다. 이장 말대로 댐 공사가 끝났나 보다 서말 댁이 부쳐먹던 천량들 한 섬지기 무논에 물줄기가 골을 따라 실타래처럼 들바람을 타고 고깔춤을 춘다. 먼 옛날 금자라 부부가 살았던 연못이라고 해서 자라실 골이라 불려지게 됐다고 한다. 예년 같으면 서말 댁이 부쳐먹던 천량들 한 섬지기 무논에 보리 싹이 파릇파릇 돋아 날 때지만 올해부터 가을걷이가 끝나기 무섭게 군 직원들이 보리씨를 못 뿌리게 감시를 하고 있다 지난달이었다. 서말 댁은 남편과 함께 군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량들 한 섬지기 무논에다 보리씨를 뿌렸다. "만석 아부지이 보리씨를 뿌리는 집은 보상비는 고사허구 가막소에 끌고 가서 콩밥을 뼛골이 시리도록 작신하게 먹인 답디다……" 서말 댁은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조런 방정머리 하군 먹실루 주둥이를 열두박으로 꿰매 놓기 전에 구구루 얌전히 있어" "만석이 아부지 와유 와아 ! 누구긴유 마을이장 뒷돌 박씨지이………" 서말 댁은 가위눌린 몸 동작으로 마을 쪽에다 손짓을 하며 징징댄다. 마을 쪽에서 마을이장이 보령군청 직원들과 천량들로 들어섰다. "이보세요 영감님 자꾸 고집을 세우면 공무집행 방해죄로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 "난 당신들 헌티 땅 한 조각 판적 읎수다." 오 노인은 보리씨가 든 삼태기를 들고 고랑으로 성큼 들어섰다. 보란 듯이 보리씨를 한 움큼씩 쥐고는 신경질적으로 휙휙 뿌렸다. 보다못한 직원이 마을이장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이장! 저 삼태기를 빼서욧!" 이장은 오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인 내윳!" "이 손 못놔! 뒤웅 박가야" "시방 모랬시유? 다시 을퍼바유!" "뒷돌박이라구 했다." "난 밀양 박가지 뒷돌 박이 아니란 말유" "씨 도독은 못 속이는 뱁이니까아 잘난 체 말란말여" "삼태기 인줘유" 이장은 삼태기를 잡고 힘껏 낚아챘다. "요런 싹수머리 없는 짜식" 오 노인은 이장의 날뺨을 쳤다. "왯 쳐윳!" 이장은 오 노인이 들고있는 삼태기를 잡아채자 끌리는 힘에 의해 오 노인은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저 저 육실얼 눔의 자식이 남의 영감을 날장구치듯 하네 그랴………!" 서말 댁은 굼벵이 세길 뛰듯 식식댔다. 오 노인은 눈을 헤집어 까고는 개구리 다리 뻗듯 사지를 부르르 떨어댄다. "아이구 만석 아부지, 저 육실헐 눔에 잡종들이 떼국눔모양 몰켜 다니며 생사람 잡네……!" 직원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보상비를 챙겨든 자라실골 사람들은 오늘도 짐 보따리를 꾸리느라 북새통이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애장이 고개를 쉴새없이 넘나들었다. 추위가 닥치기 전에 서둘러 떠난 빈집들은 군 직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부서 버렸다. 간밤에 첫눈이 땅 냄새를 맡았으니 어느 해보다 추위가 빨리 들여 닥칠 모양이다. 입동 맛을 본 바람 끝이라 그런가 콧속을 콕콕 쏘는 게 매캐하다. 잔가지 잎새들이 추위탐을 하느라고 파르르 몸살을 한다. 소설을 앞두고 아침부터 실비가 찔끔찔끔 눈물을 치더니 그 예나 진눈깨비가 수몰민의 옷소매를 잡는다. 해가 넘어갔나 진눈깨비가 종일 질척대던 애장이 고개에 닭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가 끊겼다. 마치 전쟁이 할퀴고 간 것처럼 빈집들이 연기에 그을린 서까래만이 얼기설기 흉물스럽게 삐져 나왔다 . 얼굴을 맞대고 수 십 삼 년 살아온 이웃들은 쫓기다 시피 떠났다. 빗줄기는 보이지 않고 누에고치 만한 눈송이들이 어둑살을 뚫고 나른다. "오늘도 자식들은 안 올 모양이다……" 애장이 고개로 신명을 울리며 넘나들던 차 소리는 끊겼고 마을에 불을 밝혀 논집이라고는 서말 댁뿐이다. 문턱에 앉아 졸던 서말 댁은 첫닭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모양도 안 갖춘 우씨네 수탉 울음소리이다. "저 집이 아직 이사를 안 갔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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