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旬斷想(5)스승은 피땀 흘리고, 제자들은 잠만 자고  

기도를 마치시고 일어나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니 그들은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이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이렇게들 잠만 자고 있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기도를 마치시고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셨다. 그러나 그들은 스승의 고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더구나 루가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복음에서는 기도하시다가 세 번씩이나 와보셨다고 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어서 다시 돌아가 기도하셨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 현대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뽑힌 사람들이요, 예수님과 같이 살아본 사람들이요,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스런 변모까지 보았는데 쿨쿨 잠만 자고 있었다니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고, 뽑아도 잘못 뽑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대인의 생각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본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그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솔직히 말하여 예수님이 유다같은 인간의 밀고로 잡히실 분인가?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으실 분인가?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그분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이 세상을 뒤집어 엎어놓을 수도 있는 권능을 가진 분이다. 그런데 그런 분이 돌아가시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한편 또 반대로

"몰라. 예수님이 언제 거짓말시키는 것 봤나? 말씀대로 이루어질지도 몰라.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우리들도 다 걸려들게 아냐?"

사도들은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동안 이 생각 저 생각하느라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루가복음 사가는 "슬픔에 지쳐서"란 표현을 썼다. 동정어린 말이다. 사실 이미 밤은 깊었고, 그날의 흥분도 있었고, 무어라 형언키 어려운 공포에 휩싸여서 의기소침해 있던 터라 이래저래 심신이 피로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태오복음 사가도 "그들은 너무나 지쳐서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고 표현하고 있다(마태오26: 43)

왜 이렇게들 잠만 자고 있느냐?→예수게서는 계속 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야단을 치시지 않고 오히려 부드러운 말씀으로 타이르시고 있다. 앞으로 닥칠 그들의 운명을 아시기 때문에 측은한 생각이 드셨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예수님의 인자하심은 끝까지 변함이 없다.

예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리가 떼를 지어 열 두 제자중의 하나인 유다라는 사람을 앞세우고 나타났다. 유다가 예수께 입맞추려고 다가서자   

→유다는 스승의 습관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쯤 게쎄마니에서 기도하고 있을 줄 알고 곧장 체포대를 이끌고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예수님과 입맞추려 하였다.

"입맞춤"→이는 분명 스승께 대한 존경과 애정의 표시이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배신과 능멸과 모욕의 신호였다. 저들과 짠 대로 자기가 입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란 것을 알려주는 신호였기 때문이다.(마태오26: 47)

이리하여 예수께서는 최초의 모욕을 당하셨다. 이 모욕이야말로 앞으로 닥칠 그 어느 모욕에 비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을 것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제자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제자가 가증스럽게도 존경과 애정의 표시로 키스를 하려 하고 있다.

제자를 사랑했던 스승이 아니고는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예수께서는 "유다야, 입을 맞추어 사람의 아들을 잡아 넘기려 하느냐?"하고 말씀하셨다.

→이 짧은 말씀으로 예수께서는 유다의 배반을 꾸짖으셨다. 그 입맞춤이 사람의 아들을 적에게 넘겨주는 신호임을 알고 계셨지만 스승은 아직도  "유다야" 하고 부드럽게 부르신다.

유다! 오늘 저녁만 해도 몇 차례나 예수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인가? 마지막 순간까지 유다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고 하시는 예수님의 자비가 우러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