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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3-
서말 댁은 방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불을 밝히고 있는 30촉 짜리 전구 알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침침하다. 기온이 내려간 탓인지 땅바닥은 무 채 썰어 말리듯 허옇다. 서말 댁은 남편이 누워있는 아랫목을 살피고는 혹시나 하고 빗장 질은 대문 쪽을 기웃거렸다. 애장이 고개에서 차 소리가 숨가쁘게 들렸다. 우씨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애장이 고개를 넘어가지 못하고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건수덩이에 빠졌는가 뒷바퀴가 흙탕물을 튀기며 용트림을 쓴다. 시동소리가 툭 그쳤다. 차에서 내린 우씨네 증조할머니가 손자 등에 업힌 채 고개를 올라가고 있다. 노망 들린 증조할머니는 마을 쪽을 향해 손짓을 해가며 소리를 질렀다. 우씨네 형제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증조할머니를 떠밀고 올라갔다. 건수덩이에 빠진 차바퀴는 한쪽으로 기울어 졌다. 간간이 뿌리던 빗줄기가 그치더니 닭털 같은 눈발이 흐느적거리며 춤추듯이 내린다. 애장이 고개에서 구시렁거리며 삽질하는 소리가 들릴 뿐 눈발에 가려 일행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애애앵 ,싸싸 시릉시릉 -피유 시이. 시동이 걸렸다 툭 꺼졌다. 반복해서 들렸다. "헛 둘, 어이싸 다시 한 번 헛 둘 어 가앗" "저 고개가 언간 꼬팔저야지……" 서말 댁은 중얼대며 한쪽 귀를 애장이 고개에다 몰아 세운 채 찬밥덩이를 미지근한 숭늉에다 한술 말아서 드는 둥 마는 둥 입치레를 했다. 애장이 고개에서 악쓰는 소리가 들렸다. 서말 댁은 수저를 입에 물고는 턱을 추켜세웠다. 보이는 백설가루 같은 눈발이 회오리를 친다. 서말 댁은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서울 사는 큰아들 집으로 전화를 넣어 볼 참이다. 시웃시웃 찌릉찌링 티리일…… "네에……" "이보슈우 - 교환소쥬우?" "말씀하세요" "서울 좀 대 주슈우" 뚜르르, 뚜르르 - "안 받습니다." 교환 아가씨의 짤막한 대답이 들렸다. 전화를 찰칵 끊는 소리가 귓가에 윙하게 울렸다. 서말 댁은 수화기를 든 채로 한참을 망연 자실 천량들을 바라보고 있다. 분명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안 받는다. 대전 둘째네 하고 천안 셋째 네도 약속이나 한 듯 마찬가지다. 혹 이리로 오고 있는 줄도 모르지 않는가. 자식들에 대한 서운한 구석을 애써 밀어내고는 밖을 살폈다. 마을사람들 앞에서 부모를 서로 모셔가겠다고 건성을 떨던 자식들. 도둑 때는 벗어두 자식 때는 못 벗는다는데 눈길이 막히기 전에 두 늙은이 모셔 가겠지 하며 늘 그 생각에 하릴없이 위안을 하곤 했지만 텅 빈 자라실골, 쓰다버린 세간나부랭이들이 바람에 실려 나가떨어지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금년 겨울에 침수되는 지역이라는 현수막이 바람에 날려 서말 댁 사랑채 지붕에 떨어졌다. 혼백을 부르는 사자의 옷가지를 보는 것만 같아 서말 댁은 아랫목을 살폈다. 이불깃 밑에서 냉기가 돈다. 방구들이 사람 덕보기 십상이다. 어름이 박힌 허름한 짚단을 불 쏘시게 한 것이 제구실이나 할까? 하기사 대들보 같은 자식들도 맘을 놓을 수없이 험하고 야박한 세상인데 더 더욱 군불을 지폈다고 하는 방이 냉골이다. 부모를 낼 모래 모셔가겠다는 효자타령에 미쳐 땔감을 마련하지 못했다. "낼 모래가 사람 잡겠네……!" 남편의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그렁그렁하다. 잔병치레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농사꾼이 어쩌다 이지경이 됐는지. 오 노인 하면 미사면 일대에서 알아주는 힘께나 쓰는 대장부였는데! 지난가을 타작 때만 해도 벼 한 가마를 공기 돌 굴리듯, 어줍잖은 젊은 장정 서너 몫은 품값을 해치웠다. 일제 때 미사면 오쟁이 골 황 부자 집 둘째아들 대신 징용 살다 온 대가로 천량들에 있는 하루갈이 논마지기 문서를 받아들고 만 섬지기 해볼 거라고 알뜰살뜰 가꾼 고래 논 보상비 몇 푼에 상심해 하던 차 보리씨를 못 뿌리게 하는데 충격을 받고 쓰러진 것이다. 오늘따라 눈가에 진물이 고이고 숨을 몰아 쉬는 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자식들이 오지 않는 마당에 서리맞은 애호박 처마 밑에 쑤셔 박듯 남편이 숨이라도 덜컥 놓는 날이면 큰 낭패다. 서말 댁 역시 오 노인 못지 않게 가슴이 떡 벌어진 담력 강한 여장부다. 치마만 둘렀지 행동거지나 성격이 사내들과 똑같다. 한창 들일로 달릴 때는 사내들 틈바구니에 끼어 품앗이를 해내곤 했다. 서말 댁은 전화기 곁으로 다가갔다. 손잡이를 잡고 힘껏 돌렸다. 시윳기윳, 찌링띠링, 티리링……팅, 티딩. "네에" "교환수주우?" "서울 좀 데 주슈유" 뚜르르, 뚜르르 "야들이 어딜 갔기에 전화를 안 받나아……" "불광동입니다." "누구닛?" 그만 반가운 나머지 서말 댁은 소리를 질러대다 켁켁하고 목에 사래가 들려 한참이나 숨을 못 쉬었다.. "금준데요" 손녀였다. "그으래 자라실골 할미다." "할머니 안녕 하셨어요" "온냐 에미는?" "……" 잠시 망설이는 눈치다. "시장 갔냐?" "아뇨" "그럼?" "계 하러요" 점점 기어드는 목소리다. "어딜루?" 서말댁은 버럭 고함소리가 목구멍까지 치밀고 올라오는걸 가까스로 내려 눌렀다. 전화기를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차마 손녀 앞이라 역정을 낼 수가 없어 부드럽게 음성을 낮췄다. "옆집으로 계하러 간 모양이구나" "설악산으로 갔어요" "무슨 산?" "설악산이요" 동네 계를 산꼬지로 가다니, 그래 은제 온다든?" "낼 모래요" 서말 댁은 콧심만 내 쉬었다. "욱시헐 알밴 여우같으니라구, 보상비 끼어차구 천지사방에 뿌리구 다니는군……" "에비는?" "진주 에요" 진주라면 건설현장을 두고 하는 말 일거다. 큰아들 만석이는 중장비 기술자다. 건설현장을 찾아다니다 보니 농사일하고는 남남지지관이 되버렸다. 지난번 마을 잔칫날 대전서 진주간 고속도로 공사가 내년 봄부터 시작된다는 내막을 큰아들한테 들어서 알고 있다. 그렇다면 큰며느리라도 내려 왔어야 할게 아닌가. "그래 애비는 은제 온다든?" "모르겠는데요" "딴 말은 읎구?" "……" 혹시 에비가 진주에 가면서 금주에미한테 시골부모 모셔오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나 해서 물어본건데 손녀는 까맣게 모르고 있다. "에미 오거든 자리실골 할미한티 전화 왔다고 톡톡히 일러라" 눈발이 잠시 뜸하다 서말댁은 애장이 고개를 슬며시 올려다봤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눈발이 바람에 밀려 휘휘 활개 짓을 하며 마루까지 날아들었다. "눈이 집안 밖으로 들이치면 쌍 초상이 난다는디……" 괜히 방정맞은 생각이 고개를 든다. "그나저나 애들이 왜 안 올까, 왔어도 골천 번도 더 왔다 갈 길인데……" 애장이 재를 눈썹이 시리도록 올려다봐도 아들네들이 타고 올 차는 보이질 않는다. 해가 넘어갔나 어둠이 거뭇거뭇 눈발에 날린다. 모시고 살집을 새로 장만하는 것도 아닌데 보일런지 오일런지 놓으면 된다면서 부모 모시기가 꽤가 놔서 더딘 짓거리를 하는지도 모른다. 마을 잔칫날 아들들이 효자 티 낸 것하며 딸들이 효녀노릇 한 것은 그 알량한 보상비 몇 푼 날치기 해갈 욕심에 자기들 좋아 생전 시키지 않든 배네 춤으로 두 늙은이 등쳐낸 수작이라는 걸 이제서야 전후 사정을 어슴푸레 알 것만 같다. "돈에 갈급이 난 년 눔에 종자머리들……" 괘씸하고 서운한 생각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상비를 곶감 빼주듯 갈증만 풀어 주는 건데…… 그려 자식 덕 본다는 건 동짓날 개딸기 바라는 거나 다름없는 겨" 큰며느리도 그렇다 시아버지가 반신불구로 누워 있는걸 뻔히 알면서 설악산으로 동네 계를 하러 가는 것부터가 시부모 모시기 싫다는 심보다. 서말 댁은 명치끝을 치밀고 올라오는 신물을 삼켰다. 다시 전화통을 잡고는 손잡이를 돌렸다. "이부슈우" "네에 말씀하세요" 졸음 섞인 교환 아가씨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렸다. "대전 좀 대주슈" 한참만에 수화기를 받는 소리가 찰칵 들렸다. "이야--- 용두동이유" 둘째아들 홍이 네가 사는 주인집 서천 댁의 목소리다. 서말 댁은 둘째한테 여러 번 가봐서 음성만 듣고도 알 수가 있다. "서천 댁 이시구먼유" "누군디유?" "자리실골 만섭 할미유" "이야" 어째 전처럼 달가워하는 기색이 아니고 심드렁한 음성이다. "문간방 사는 만섭 아범 좀 바꿔 주슈우" "기둘려 보슈우" 한참만에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며느리의 음성과 손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가는 잠잠하다. "이보슈우" "이야 말씀 허시유" 서천 댁의 목소리가 마지못해 하는 응대다. "그 옆땡 머리에 만섭 어멈 있는 게 아뉴?" 서천 댁은 수화기를 귀에 바싹 갔다 댔다. "뭐라 그랴, 난 못햐"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는 서천 댁의 음성이 들렸다. "들려욧! 할머니"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보슈웃 서천 댁!" "이야--" 서천 댁의 목소리가 어눌하게 들렸다. "만섭 어멈 좀 바꿔 주슈우" "만섭 어멈이 아니구 공주 사는 우리 시째 며늘아구먼유" "그류 만섭 어멈은 방에 읎든가유?" "오늘 아침에 두 내외가 대판 들구잽이를 했구먼유" 서말 댁은 맥없이 주저앉았다. 두근대는 가슴을 추스르고는 힘없이 물었다. "믄 일로 싸웠대유?" "글씨, 자시는 모르 것구 언 듯 들은 께 만섭 아범이 자라실골 부모님 모셔 온다 하니께 만섭 어멈이 둘째 자식만 자식이냐 염병할 것 연탄 백장 값두 안돼는 알량한 보상비 몇푼 쥐어 주고는 붙어살려고 한다면서 악을 쓰더구먼유, 이런 말을 안 할려구 했는디 알구본께 만섭 어멈두 보통 여수깽이가 아니데유" "그래 우리 며느리는 어디 간줄 모르구유?" "글시유 만섭 아범이 주먹에다 침을 묻혀 가지고 만섭 어멈 심장께라나, 명치께라나 하는 곳에다 후크를 한방 먹였더니 그만 만섭 어멈이 요절 방아를 찧는 바람에 병원으로 날짝 실려갔구먼유" 서말 댁은 명치끝에서 신물이 치밀고 올라오는걸 눌러 참았다. "이보슈우, 이보슈우" 서천 댁이 부르는 소리가 귀가에 윙 댔다. 서말 댁은 대꾸도 하지 않고 수화기만 들고 있었다. "섭이 엄마 전화가 끊겼나봐" 손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시어머님이 뭐라고 그래요?" 분명 며느리의 목소리다. "뭐라 긴 들어오는 대로 전화하라는 구먼" "죄송해요 할머니 만섭이 아빠한테는 암 말씀 마세요" "꼭 죄 짓는 것만 같아서 원" 서말 댁은 수화기를 슬그머니 내려놨다. 망연 자실 앉아 애장이재를 올려다보고 있다. 어두워 더는 물체가 보이지 않는다. 바람에 참나무 상수리껍질 떨어지는 소리가 빗방울 튀듯 간간이 들렸다. 어두운 아랫목에서는 남편의 숨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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