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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완벽주의자의 고백
34세 남자인 K씨는 완벽주의와 강박적인 성격으로 똘똘 뭉친 소유자이다. 그는 자신의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뿐더러 의미 없이 보내는 작은 시간에도 자신을 가차 없이 나무라는 사람이다. 나이에 비해 늘 엄숙하고 다방면에서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직장일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쌓기 위해 늘 바쁘다. 그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여가활동까지도 그 자체를 즐기기보다 늘 타인들의 평가와 인정에 목을 맨다. 옷 매무새와 행동거지에도 흐트러짐이 없으며 회사 밖으로 나갈 때는 애초에 있었던 의자의 위치를 기억해서 반드시 해놓고 나갈 정도이다. 결혼은 스스로가 정해 놓은 경제적, 사회적 위치에 오르고 나서 이상적인 배우자와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깊은 연애경험이 없다. 그렇다고 여자를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니고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해서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그는 거의 24시간을 자기 계산 하에 계획적으로 보내는데 여자를 만날 때도 미리 시나리오를 다 세워놓는다. 그날의 데이트 코스는 물론이거니와 어느 시점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수첩에 적어 놓기도 하고 어느 시점에서는 의도적으로 실수를 저질러서 인간미를 풍겨야 한다고 계획하기도 한다. 실수까지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그와 상담을 하고 있노라면 때로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인생을 심각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많은 수가 병적인 완벽주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 사회가 갈수록 병적인 완벽주의자를 생산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재다능한 인재를 요구하는 현 사회는 개인들에게 끊임없이 멀티 플레이어 선수와 같은 다방면에 능력을 갖춘 인간이 되라고 부추긴다. 한 가지 분야에만 프로가 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다양한 분야에 준 전문가의 재능을 쌓으라고 한다. 연예계에서도 만능 엔터테이너가 아니고서는 발을 붙이기 힘든지 오래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이 사회는 2등은 없고 1등만 기억되며 과정은 없고 성공의 결과만을 놓고 박수 받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이에 발맞추어 ‘아침형 인간’, ‘멀티형 인간’과 같이 하루를 마치 48시간처럼 살아가라는 자기개발 서적이 붐을 이루어가면서 완벽형 인간을 끝없이 부추기고 있다. 물론, 자신의 일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큰 장점이자 미덕이다. 또한 끝없이 터져 나오는 부실공사나 불량식품 파동, 국민의 고통을 담보로 준비되지 않는 정책을 남발하는 행정을 보면 자기이익이 아닌 공익을 위한 완벽주의가 이 사회에서 얼마나 부족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지금 문제 삼는 것은 병적 완벽주의다. 바람직한 완벽주의자란 자신의 능력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며 그 자체로 진정한 기쁨을 얻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통해 더 크게 성장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병적 완벽주의자들은 사소한 실수도 저지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애초부터 능력에 맞지 않는 가혹한 목표를 설정하며 끝없이 자신을 자학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타인에게까지 완벽함을 기대한다. 자신의 부하나 가족들에게 그러한 요구를 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자신에 대한 부정적 감정까지 덧붙여서 상대방의 피를 말린다. 이들의 삶에는 도전은 없고 준비만 있다. 많은 수의 병적 완벽주의자들은 애써 쉬운 길만 찾아다닌다. 실패의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인생을 한번 지고 나면 탈락해버리는 토너먼트 식의 경기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차례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한다. 더 나은 목표만 있고 도전은 없기에 현실은 늘 불만족이고 머뭇거리고만 있다. 그래서 지금 일은 정작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자주 빠지고 그럴싸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하는 막연한 몽상 속에 살아간다. 그럴수록 현실은 더욱 피폐해져만 간다. 병적 완벽주의자들이 정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끝없는 성공일까? 상담이 깊어지면서 어느 날 K씨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공부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초등학교 시절에 한 과목을 만점 받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달려갔다고 한다. 대문을 열고 뛰어 들어가 어머니에게 자랑을 한 순간 집안일을 하던 어머니는 별로 기뻐하지 않는 가운데 ‘그래?’라며 너무도 당연한 일을 한 것처럼 여기더란다. 그러면서 그 엄숙한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정말 사랑받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끝내 울먹거리고 말았다. 병적 완벽주의자들은 사랑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받아줄 수 있는 이상적인 사랑을 꿈꾼다. 그러기에 겉으로는 엄숙하고 절제된 감정의 소유자들이지만 이들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진한 외로움이 묻어 나온다. 이들의 과도한 성취욕은 사실은 인정받고 애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무의식에는 영웅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변함없는 애정과 인정을 받지 못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K씨가 만난 내면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끌어안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 번도 넘어지지 않으려는 무모함보다는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서 다시 뛰어가는 허용적인 사람이 되기를 마음깊이 바란다. 그리고 올해가 가기 전에 사랑의 열병에도 빠져보길 진심으로 바란다. 문요한 (태능성심정신과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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