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1)
 물난리 중에 맞은 휴가.. 그 첫날
2002. 08. 07
다소 흥분한 탓인가, 늦도록 잠이 오지 않는다.
마루에 누우니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하늘은 칠흑같이 어둡고 스며드는 바람결에 산내음이 묻어나 싱그러운데, 앞산 폭포의 물 쏟아지는 소리에 한밤의 정적은 무자비하게 깨어지고 만다. 집사람은 티브이에서 방영하는 영화에 빠져 있고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고 있는데 천둥소리에 번쩍이는 섬광이 하늘을 가르고, 이내 빗방울이 창문에 부딫쳐 요란한 소리를 낸다.
아침에 눈을 뜨니 끊임없이 비가 내린다.
뉴스에는 저지대 침수 소식이 속보로 나오고, 강둑을 삼키려는 듯 무서운 속도로 범람하는 사진들이 이어지고, 동부간선도로가 잠기어 달리다 멈춘 자동차의 행렬이 답답함을 더하는데.. 이 지경에 과연 떠날 수 있을까?
체념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피곤이 남았는지 이내 다시 잠이 들었고 다시 눈을 뜨니 아홉시가 넘어 있다.
몇군데 전화해 보니 별 문제는 없다 하지만 걱정은 떨칠 수 없고, 사무실에 전화하니 왠 전화냐구 핀잔이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출발은 내일로 미루기로 하고 오늘은 미루어두었던 집사람과 쇼핑이나 하겠다고 정오를 조금 지나 집을 나섰다.
밤새 내리고도 부족한 지 끊임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와이퍼는 분주하게 움직인다. 먼 산 허리에 걸친 운무는 푸른 산색에 더욱 선명한 흰색으로 피어 오르는데, 하늘을 흐르는 검은구름은 노여움으로 가득하여 마치 쏟아붓듯 비를 내리고 포도는 넘치는 빗물로 흥건하다. 대지는 젖어들고 강물은 불어나고,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비 멈추게 할 수 있는가.
넘치는 강물 막을 수 있는가.
자연의 신비로움과, 모자라고 넘치는 이치의 우주와 천지만물을 관장하시는 주인이신 그분의 섭리를 우리가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오.
내리는 비가 도로 위에 넘치고, 달리는 차 바퀴에 일어나는 물안개 자욱한 그 길... 그 길위에 길이 있나니...
잠실 롯데월드..
백화점에 들어가니 산듯한 분위기에 시원하게 냉방된 공간이 생기로 넘치고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여름이 되면서 시원한 하복 하나 사고 싶었는데 그동안 시간을 내지 못해 미루었던거 해결하고, 조금은 힘들었지만 집사람 쇼핑동무 두시간 정도 노력봉사하고, 오랜만에 호텔라운지에 들려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집사람은 프레쉬쥬스를 시키고 나는 커피를 주문하니
이 양반 하는 말
'도대체 이게 무슨 호강이야?'
호텔에 20년을 넘게 근무했는데 둘이 앉아 차 마시는게 처음이랜다.
내가 그리도 무심했나.....
직원들도 대부분 바뀌고
시설도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고
나도 달라지고, 집사람도 많이 변했다.
변하는게 어디 하나 둘이랴...
흘러가는 세월속에 모든 것은 변하고 흘러가고 사라지나니...
신발집에 들러
샌들도 하나 사고
돌아오는 길
빗줄기는 변함없이 꾸준하다.
흙탕물 가득한 한강은 거칠게 흐르고
모두들 자기들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도 달려간다.
큰 마음 먹고 세웠던 계획이 약간은 차질이 있었지만
업무를 벗어나 자유롭게 지냈으니 다행이다.
휴가 첫날은 지나갔고
내일은 아침 일찍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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