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미는 언제 걷힐는지? -2-
그는 정 씨와 사무실로 갔다. 덕장일을 마친 구레나룻 이 씨가 대충 수돗물에 손을 헹궜다.그는 허리에 찬 수건으로 손을 닦고 사무실로 따라 들어왔다. "김 선상 오늘은 왜이리 늦은 겨, 무슨 일이 있던게 아냐? 그그제부터 폭풍주의보가 내려 출항을 못하고 있으니 생태국은 다 먹었구먼, 숭숭 썬 무에다 벨이 달린 곤지를 넣고 고춧가루를 벌겋게 푼 국에 쐬주 한 잔 생각이 간절하군. 원양태는 멋(맛)이 읍어놔서---.전에는 배를 탔었지.입김마져 얼어서 수염에 달라붙는 새벽 세 시에 출항을 했어. 생태국에다 막소주를 들이키곤 일곱이서 십여 톤의 연승선을 타고 작업을 했네. 명태란 놈은 양미리를 잘먹거덩. 한참 부리나케 낚아 올렸지. 해금강이 밴히 들다보이는 곳에서 말야. 그때 우리 김 사장도 함께 탔었네. 그러다가 끌려갔어---" 말을 하다 말고 정 씨가 따라 준 소주 잔을 들기가 무섭게 입으로 가져갔다. 벌컥벌컥 소리가 나도록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는 길게 찢은 건태 살점을 고추장에 찍어 모지락스럽게 씹어댔다. 그는 이북까지 끌려 갔다 온 얘기를 도중에서 끊어버렸다. 아직도 그 때의 일로 겁에 질린거라 짐작이 들었다. 익주는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얘기 얼마 전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배를 타지 않습니까>" "김 선상. 자네 그 소릴 우서 들은 겨? 그 얘길랑 함부르 끄니지 말기여. 간첩 소릴 듣고 싶지 않으믄. 술먹는 자리에서 괜한 쓰잘떼기없는 말을 내가 해갖고---" 그는 엎질러진 물을 보듯무척 난처한듯 끄윽 소리를 냈다. 다시 잔을 비우고는 화가 치밀어 못견디겠다는 듯이 한참이나 정 씨를 향해 눈을 흘겼다.그리곤 오줌버케처럼 허옇게 낀 설태를 내밀었다. '비러먹을 놈 네놈 짓이지? 당장 칠듯이 포악하게 눈을 부릅뜨자 정 씨가 주춤거렸다. 이미 얼굴이 불콰해진 그도 시덥지 않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야! 이 털보놈아. 지금이 워니 때여.쌍팔 년도 일갖고 주접떠는 그 주변머리하곤, 턱주가리가 허얘가지고 덕장일이나 하는 무식쟁이 뱃놈에게 이제 뭘 더 우쪄겠나? 에라이 이 호랑말코야!" 그는 깊게 숨을 몰아 쉬며 내장까지 쏟아낼 듯 거칠게 내 뱉았다. "김 선상 보게나 전교줄 하다가 쫓겨나 나리가 까지 도망처왔잖은가 . 이눔아!" "집어쳐! 씨부럴 것. 뭘 안다고 좆퉁수 불어. 도망은 무슨 얼어죽을 놈에 도망이여. 교장이란 작자가 운동회빈가 뭔가를 떼묵다 들통이 날께비 내몬겨. 김 선상이 축구뽈 하난 잘 찼던긴데---.그놈에 전교준가 선교산가? 난 자꾸만 헷깔려서. 암튼 트집을 잡아 뽈을 못차게 헌모양이여." "저 놈 저 소갈딱지하곤, 쯧쯧!" 정 씨는 그의 말에 혀를 찼다.익주는 매우 입장이 난처했다. 정 씨에게서 들은 얘기만 안 했어도, 그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를 바라보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잔을 익주에게 내밀며 헛기침을 킁킁 해댔다. 보일러 실에서 스팀이 터져 화상을 입었을 때였다. 배운 사람이 막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기계 다루는 법을 자상하게 일려 주었다. 그는 익주를 피신해온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요즘 흔히 운동권에서 지명수배를 받고 시골로 몰래 잠적해 온 사람처럼 알고 있었다. 이곳은 안심할 수 있으니 걱정말라는 것이었다. 한 때는 자기에게도 감시자가 따라다녀서 그들을 피해서 도망을 다녔다 했다. 자주 북위38도 28분 최 북단까지 가서 조업을 하다 납북되었다고 했다. 그는 큰 키는 아니었다. 육십이 훨씬 넘었지만 딱 벌어진 어깨가 매우 건장해보였다. 뱃일을 하는 사람치고는 아는 것이 많았다.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북쪽으로 갈수록 많이 잡혔다. 어군을 좇아 북상하여 어로작업을 하는데, 그날따라 공해상을 지키는 우리 경비정이 보이지 않아 불안했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 검은 물체가 나타나 해미가 잔득 낀 바다를 허연 물거품을 가르며 달려왔다. 서치라이트가 모르스 부호를 빛으로 바꾸어 연신 번쩍거리며 달려들 때, 그 때는 하늘이고 바다고 온통 시커멓게 보였고, 꼼작없이 북한 경비정에 끌려 납북되어었다가 일년 만에 송환되었다. 그 후부터 다시는 배를 타지 않고 김 사장 밑에서 덕장일을 줄곳 하고 있다며 이곳 어촌의 애환을 털어놓았다. "이곳서 난 우덜은 줄곳 바다에 목줄을 건 어부들인데 무슨 놈의 사상과 이념을 달리해 월북을 했겠나.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같은 어부들을 뱃놈이라 하잖은가! 그런 우덜은 먹고 살기 위한 사투의 몸부림이었네. 왜 위험한 줄을 알면서도 해금강이 뻔히 보이는 곳까지 가야 했겠나. 먼 바다에는 저인망에다 대구리. 어군탐지기까지 설쳐대 분별없이 쓸어가니 점점 씨가 말라 근해까지 올 고기나 있겠어. 그래서 어군을 따라 자꾸 북상을 하게 되지. 분명히 이북영해는 아니었어.내갈기는 공포탄에 질려 도망도 못하고 꼼짝없이 잡혀갔지. 이제 정권도 바뀌고 했으니 이런 말이라도 속시원히 하는 걸세." 그는 죽기 전엔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할줄 알았다며 오른 손으로 손가락이 없는 왼손을 거머 쥐고 감회하는 표정이 진지했다. 이북에 끌려가서의 고통보다 오히려 송환된 후 개취급을 받은 수모가 더 무서웠다면서 다시 긴 한숨을 토해냈다. "출신 성분이 확인된 동무들은 남반부의 송환 요구로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곧 보내주겠소 할땐 살았구나 했어. 그러나 북조선 당국에 비협조적인 동무가 있어서 하면서 제일 어린 두명은 우리 북조선의 품에 남길 원했다며 행방조차 묻질 못하게 핸거.그래서 우덜 중에는 그들의 수작을 믿는 사람덜은 읍었어. 암튼 어업이 목적아니고 무슨 지령을 받고 염탐하러 의도적으로 어로 한계선을 넘은 거라 따로 따로 불러 윽박지를 땐 이젠 죽었구나 하는 두려움에 모골이 송연했어. 우째 이런 일이 일어나리란---- ! 이제 시상이 바뀐거야. 내 엽태 이렇게 후련하게 털어놀 수 있단 생각이나 핸줄알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대밭에 가서 외친 이발사 얘기 말일세.' 그는 말을 하면서도 불안한듯 연신 시선을 밖에다 두곤 했다. 가끔 생각이 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가 얼마나 공포에 질린 그간의 생활이었나 하는 모습을 통해 상상이 갔다. "나나 이씨는 그래도 좀 난겨. 우리 사장은 수산대학까지 사람이여. 근해의 어획고는 현저히 줄어들고 해서 양식기술을 배우러 일본으로 가려했지만 출국을 못하게 핸겨. 그도 모자라 친했던 친구란 놈은 정보 요원의 앞잽이 노릇을 하고 무척 살벌했어. 어떻게 친구가 돈 몇푼에 친굴 감시하고 고자질을 하겠나.정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배우지 못하고 없이사는 사람들을 교묘히 이용핸겨. 정권이 바뀌니 빌붙어 사는 놈들은 다들 여기를 뜨더군! 그런 인간들이 불상하기도 했지만, 정권이 더 몹쓸놈들이여. 오히려 인민군들이 더 신사적이더군. 이북에 끌려갔을 땐 그들은 야비하게 서로를 이간질 시키지 않았어, 다만 출신 성분을 가리기 위해 협박은 했지만 직업이 어부들인 것을 그들은 모르겠나. 다만 다시는 한계선을 넘지말라는 경고였어. 송환되어 정보부에 끌려 다니며 간첩이란 죄명을 덮어씨우고는 벌금까지 물어가며 사람을 괴롭혔어. 우리 경비정은 일부러 잡혀가도록 나타나지도 않고 빌미를 준거야. 해상에서의 경비정 횡포는 또 어떻고. 횟감으로 좋은 생선은 상납을 해야되고. 만약 불응하면 아예 조업을 못하게 남쪽으로 내몰기도 하지. " 그의 검게 패인 주름에서 한 세월의 섟이 언듯 비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난,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네. 사장이나 이 씨도 진짜 뱃놈이자. 한창 고기가 잡힐 땐 뱃길도 가벼웠다네. 손은 병신이 됐지만, 그래도 바다는 사나이의 기백이 넘실거려. 속상하거나 울화가 치밀 때는 바다가 감정을 잠재워 주지! 자네도 해미가 걷히면 바다에 나가 보게나. 바다 한가운데선 뭍에서의 잡다한 생각이 싹 가시고 가슴이 확 트일테니까." 정 씨의 예기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예기를 듣는 것 같았다. 익주는 가슴 언저리가 뻐근해옴을 느꼈다. 자신이 당한 일인 것 처럼 몸이 떨려왔다. 그들이 겪은 과거는 엄청난 시련이라 생각되었다. 자신도 한 때는 비분강개하였다. 동료 교사인 차 선생에 대한 증오심이 뭉클 솟아났다. 축구부 선수들과 합숙훈련을 할때, 차 선생은 참교육을 위한 추진 결성회를 열었다. 타학교 평교사들도 많아 참석했다. 그들의 모임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익주는 합숙훈련을 빙자하여 도중에 빠져나왔다. 며칠 후 귀가하던 중에 차 선생을 만났다. '김 형, 오랜만이오.우리 어디가서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얘기합시다.'하는 그를 더 이상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쾡한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얼굴이 무척 수척했지만 시선은 투지에 불타는 듯 매우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전철역에서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구원을 얻을 것이니---'하면서 목청을 돋우던 쾡한 눈의 그 사내와 흡사했다. 그를 따라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눈에 익은 타교사와 동료 교사들이 이미 와서 술잔이 돌고있었다. 오늘 모임에 끌어들이려 일부러 차 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한 편으론 불쾌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들이 주고 받는 많은 얘기를 들으며 건네주는 술을 마시며 마음이 안절부절하여 당혹감에 술자리가 매우 불편했다. 그들이 틈을 주지 않고 질타 반. 설득 반에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했다. 그 곳을 빠져나가기엔 명분이 서질 않았다. 더 이상 버틸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들이 권하는 술에 취기가 돌았다. 이미 취해있었다.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그들이 도로 어깨를 누르며 자리에 앉혔지만 익주는 다시 일어났다. 마-악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는 그에게 누군가가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여자 꽁무니만 좇아다니면 단가' 하는 비아냥거리는 소리에 그는 섬짓했다. 찬물을 뒤집어 쓴 듯 놀랐다. 휘청거리는 몸을 돌려 의자를 잡았다. 그러자 바로 옆의 차 선생이 그를 잡고 만류했다. '김 형, 왜이래 진정하시오. 이건 나만이 살자는 의도가 아니잖소,. 저 친구들이 심한 말을 했다면 내가 대신 사과하겠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익주는 속주머니에서 도장을 꺼내 들었다. 뚜껑을 잡아 빼어 입김을 호호 불었다. 참가서명부 이리 줘. 양호 선생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몰지각한 여자가 아냐. 이런 식으로 매도한다는 건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거야.'하면서 그들이 내민 서명부에 도장을 가져갔다. 그는 도장을 찍기 전에 그들을 바투 바라봤다. '이건 모함이야! 애들 치료차 드나든 것을 갖고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 나 가겠어 이런 모멸감을 느낄 바엔 차라리 당신들을 만나지 않겠어.' 하면서 비척거리면서 도장을 거두려 했다. 그 때 누군가 손을 잡고 도장을 눌러 찍었다. 익주는 상을 엎어 버렸다. 한참 난동을 부리다 차 선생과 그 일행들에게 끌려 포장마차로 갔다. '김 형 미안하오. 이러자는 뜻은 아니었는데, 그러나 우리 일을 도와주는 셈치고 오늘 일은 잊읍시다.' 그의 말을 들으며 그와 심하게 다툰 기억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계 속-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