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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는 언제 걷힐는지?
해미는 언제 걷힐는지? 그는 건태를 한 차 싣고 진부령을 넘었다. 가락시장에 도착한 뒤 거래처에서 점심을 먹었다.인부들과 마시라고 주는 소주궤짝과, 보일러 룸에 설치할 스텐레스 조립앵글을 실었다. 떠나기엔 좀 이른 것같아서 서부 트럭터미널로 가서 주차를 하였다. 이제는 자리도 잡히고 해서 차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전교조 복직 운동본부에 나가고 집에 없었다.그의 부인과 잠깐 얘기만 나누고 다시 진부령을 넘어 돌아왔다.돌아오는 길에도 내내 차 선생을 떠올렸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언젠가는 그를 만나 과거의 일들을 풀어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동안 그에 대한 감정이 고무풍선 처럼 부풀어있었다.그가 구속됐지만 한 번도 면회를 간 적이 없었다.그때 겪은 갖은 고통을 떠올리며 씁슬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덕장 뒷켠에다 트럭을 주차하고, 앵글을 내려 창고에 쌓았다. 친친한 바람처럼 분기가 잔득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지기랄꺼 고연놈에 바닷날씨하곤!' 하다 엉겁결에 튀어나온 말에 그는 놀라서 흠짓했다. '내가 벌써 뱃놈이 다 됐구먼' 하면서 너무도 많이 변했다는 사실이 자신도 믿겨지지 않아서 인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검게 그을은 얼굴은 그렇다지만, 투박한 강원도의 말투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복직이 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기다림은 끝이 없었다. 해직되어 무작정 간곳이 남해의 어느 조그마한 어촌이었다.그곳에서 며칠을 잠적했다. 아침 일찍 해안 능선을 따라 걸으며 망망 대해를 보았다. 뭍에서의 안개보다 더 지독한 해미가 살갖에 스며들어 매우 칙칙했다.염분 끼가 있어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그런 기분이 늘 자신의 주위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그는 덕장을 돌았다.손질한 명태 물기를 빼기 위해 매다는 덕장에 서 조금 떨어진 곳이 작업장이다. 그곳에서 동태를 손질하는 여자들의 수다스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작업장의 스레이트 지붕은 높새에 떨고, 대각선으로 건너지른 각목기둥에 매달린 백열전구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커다랗게 그림자를 휘두른다.그곳에는 장화를 신고 고무장갑을 낀 여자들 뿐이었다. 그녀들은 큰 물탱크 가에 둘러앉아 녹은 명태 배를 따고 있었다. 검고 작달막한 부엌칼로 배를 갈라 누르스름한 내장과, 둥글고 길쭉하게 맞붙은 붉은 알을 끄집어낸다. 알의 표피의 핏발이 나무뿌리처럼 가늘게 뻗어나가 붉은 핏줄이 선명했다. 알과 창자는 따로 깨끗이 씻었다. 그것은 별실에서 양념을 하여 알은 명란젓으로. 창자는 창란젓으로 담은 다음 용기에 넣어 포장을 하였다. 예전엔 처자들도 많았다는데, 요즘의 농촌이 그렇듯이 어촌에도 그런 실정이었다. 청각과 미역, 우뭇가사리. 천초도 뜻어 애면글면 가르쳐 놓으니 제 잘났다고 처자들은 다들 도시로 떠났다고 했다. 새벽같이 뱃일나간 바깥 사람 뒷바라지 하다 아낙들은 굼뉘에 얼굴이 잔득 찌들었고, 머리도 희끗희끗 까치놀같이 하늬바람에 폴싹거리는 여자들 뿐이었다. 작업장 주위에는 온통 비린내가 넘실거렸다. 여느 날처럼 오늘도 작업장의 여자들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감실감실하게 검은 머리가 섞인 여자는 말코처럼 코를 벌름거렸다. 비린내에 찌들어 습관적인 것 같았다. 콧잔등을 어깨에 문지르며 너스레를 떨었다.그져 손자 녀석 하나만 생각하고 사는 것 같았다. 공부는 잘 하는지 밥은 제때에 챙겨 먹는지 안절부절 할 때가 많았다. "우리 종구 핵교갔다 올 때가 지났는데 와 안 오는 지 모르겠고마. 이놈아가 누카 쌈박질이나 안 하는지-----" 옆에 앉은 허리가 궁둥이같이 펑퍼짐하게 살집이 좋은 여자는 학교얘기가 나오자 칼질하던 손을 멈췄다. 그녀가 주위를 휘휘 둘러보었다. 누굴 찾는 것 같았다. 양미간을 치켜새우고 어줍게 입을 열었다. "김 선상이 안 보이지비. 이래 늦은 적이 없었지비야. 사고라도 난 게? 강원도 길이란 원래 산세가 험해놔서, 무시기 서울서 종교준가 뭔가를 했다가 해적이 되어 내려왓다나 뵈이. 안사람이 사장 사모님하고 먼 친적벌이라지비 아마." 말을 하다말고 고개를 돌렸다. 미리내가 잔물결을 이루던 북쪽이었다. 1-4후퇴하여 3-8선이 막혔다. 그녀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영감과 아들찾아 간다고 기다리고 또 바라보면서, 허구한 날 여름이면 오징어 가랑이에 겨릅대도 끼우고, 한겨울이면 어판장에 나가 양미리를 역으면서 도 '기놈의 무서운 뎡때문에 !내래 님다생각에 디금,___' 가슴 안팍으로 멍이 들었다는 그녀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말코여자가 답답하다는 투로 말을 하였다. "아다 해적이 뭐람시여. 서울서 선생질하다 해직되어 이곳까지 왔다카제. 우리 종구가 김 선상 아들하고 한반인기라. 엇그제 핵교서 일일 고산지 뭔지를 했다나벼. 거시기 울메나 말을 잘하던지 애덜이 넋을 뺐다카데. 저기 오는구먼, 한 탕 뛰었나? 근데 오늘은 꽤나 늦고마___" 말코여자는 짐을 들고 오는 그를 보자 뜨악해 하며 하던 말을 멈췄다. 그녀들이 지껄이는 말투는 경상도도 아니고 이북도 아닌 이쪽 저족 사투리가 뒤섞인 말이었다. 여자들이 김 선상 수고했다며 비나리를 쳤다. 언제나 수다를 떨다가도 그만 보면 말수가 적어졌다. 선생님이란 적직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 그녀들에게 그느 항상 예의바르게 행동을 했다. 서울서 일이있어서 늦었다며 소주를 몇 병 내려주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는 사무실에 소주궤짝을 밀어넣고 보일러실로 갔다. 뜨거운 열기가 훅하고 달려들었다. 게이지의 눈금이 심하게 떨고 있었다. 연료 탱크에 기름을 채우고 난 뒤여선지 기름냄새가 진동을 했다. 마침 정 씨가 탱크주위를 걸레로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익주는 그와 밖으로 나왔다.바람이 차츰 기승을 부렸다. 보일러실에서 내뿜는 검은 연기는 잔뜩 흐린 하늘로 빨려 나갔다 동태를 말리기 위해 돌리는 보일러를 처음엔 잘못 다뤄 혼이 났었다. 과열로 인해 스팀이 터져 화상을 입기도 했다. 조막손이 정 씨에게서 다루는 요령을 배웠다. 보일러 룸은 전국에 30여 개 정도이며 하루에 1만~1만5천 마리 정도를 처리했다. 연안에서 잡히는 연동선의 조태 (낚시)나 유자망의 망태(그물)는 맛과 질이 좋지만, 워낙 가격이 비싸 원양태를 부산과 포항의 종합상사에서 콘테이너 화물로 냉태 1짝 90마리. 300편을 들여왔다. 건조실에서 나오면 4~5시간 냉동하여 25톤 트럭에 186개로 1박스당 8코 32마리를 가락동과 오장동 중부시장으로 직송하였다. 운송은 주로 익주가 했다. 명절 밑이나 물량이 많을 때는 하루 두 번 서울을 왕복했다. 왕복 500여킬로나 되는 거리를 빠르면 9시간 안에 질주했다. 늘 다니는 터라 커브길에서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돌았다. 뒤따라 오던 승용차들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휘청거리는 것을 룸미러로 볼 수 있었다. 그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면서 미소를 머금기도 했다. 암울했던 서울생활이 잊혀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교사가 아닌 트럭운전수로 틀이 잡혀 가는 셈이었다. --계속-- (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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