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되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너희와 이 과월절 음식을 함께 나누려고 얼마나 별러 왔는지 모른다"(루가 22: 14∼15)

"얼마나 별러 왔는지 모른다"→늘 하는 식사이건만 왜 이 만찬만은 그렇게 별러 오셨을까?

이는 당신의 죽음을 예감하시고 당신 생애의 마지막 과월절을 당신이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하고 싶으신 마음도 있었겠지만 사실은 앞선 징조를 사실과 대체할 때가 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성체를 인간에게 주시어 당신 사랑의 가장 높은 증거물로 남기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찬 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고 나서 겉옷을 입고 다시 식탁에 돌아와 앉으신 다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왜 지금 너희 발을 씻어주었는지 알겠느냐? 너희는 나를 스승 또는 주라고 부른다. 그것은 사실이니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13: 12∼15)

→발을 씻어주는 것은 종이나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종같이 제자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신 것은 인류의 구속이 오직 겸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지난 연말 교황님의 참회의 일환으로 각 교구별, 본당별로 참회의 예절이 있었다.(서울교구:12월 3일) 그 예절 6항이 聖職主義와 權威主義에 대한 반성과 참회였다. 성직주의와 권위주의는 약간은 그 성질이 다르겠지만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은 역시 겸손하고 통한다.

중세기의 종교분열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닐까?

해마다 사순절이면 주의 만찬 전에 洗足禮가 행해지고 있는데 예수님의 그 본 뜻은 살아나고 있을까? 하나의 의식으로만 끝나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자꾸 일어나는 것은 웬일일까? 이 마음은 비단 나만의 기우에서 일어나는 마음일까?

잘 들어 두어라. 나는 과월절 음식의 본뜻이 하느님 나라에서 성취되기 전까지는 이 과월절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루가 22: 16)

"하느님 나라에서 성취되기 전까지는"→유다인의 이 잔치는 신비적인 다른 잔치의 앞선 징조 였으나  지금은 이것이 대체되고 유다의 이 규정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설정이 성체성사이다.  신비적인 이 잔치에는 예수께서 세우신 새로운 나라, 곧 교회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게될 것이다.

이 말씀을 만일 정신적인 의미로 생각한다면 성체의 잔치 외에 하늘나라에서, 구원받은 인간이 참여하게 될 잔치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교회 안에서 언제까지나 끊어지지 않을 이 신비스러운 잔치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복음사가가 이곳에서 말하는 것보다는 더 자세히 말씀해주셨을 텐데.……

그리고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 자 이 잔을 나누어 마셔라"(루가 22: 17)

유다의 전례에 따르면 과월절 식사를 하는 동안에 잔을 네 번 돌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마시기에 앞서서 에집트에서 해방된 일을 감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축복과 기도를 올렸다. 지금 감사 기도를 드리고 넘긴 잔은 이 네 번 건네는 잔의 하나였다. 출석한 사람은 그것을 돌려가며 마신다. 여기까지는 아직 유다의 과월절 식사일 뿐이다. 예수께서는 아직 성변화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