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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이 보고 싶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곳을 여행하고 싶으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두 가지 여행이 젤 하고 싶어요.다른 사람을 만나는 여행,그리고 나 자신을 고요히 바라보는 여행....." 정말 사람처럼 기기묘묘한 여행지가 또 있을까?어떤 사람에게나 산호섬 같은 곳이 있고 아프리카 오지 같은 곳도 있다.그런가하면 광화문 뒷골목 같은 곳 난지도도 반드시 있다. 나는 마더 데레사에게도 난지도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그 분도 인간인데 어찌 편한 것, 좋은 것을 하고 싶지 않았으랴? 그러나 그분에겐 '정화시스템'이 완벽하게 되어있어서 그 모든 세속의 욕망을 통제하고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기기묘묘한 사람여행. 그래서 나는 사람들 만나기를 참 좋아한다. 몇 달 전에도 수원에 강의하러 갔다가 저녁때가 되어 식사를 하게 되었다.어디가 좋을까? 무얼 먹을까? 두리번거리다가 용케도 찾아낸 집. 미식가가 아닌 내가 최우선 조건으로 찾는 곳은 화려하지도 않고 거창하지도 않는 곳. 내 눈에 번쩍 뜨이는 곳이 있었다. 숨은 그림처럼 조용히 구석에 처박혀 있는 집.일반 가정집을 개조도 하지 않고 그냥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소박한 집 모양처럼 메뉴도 소박한 한식.된장찌개에 김치찌개, 북어백반 등을 팔고 있었다.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식당이었지만 사람들은 넘치도록 많았다.나와 남편은 좁은 골목길 같은 층층대를 구불구불 올라가서 3층에 자리를 잡았다.앳되 보이는 청년이 쟁반에 물주전자와 컵을 들고 허걱허걱 숨차게 올라왔다.그는 우리를 보더니 방긋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해맑았다. "어...서... 오...세...요.......". 더듬더듬 그가 건네는 인사를 들으며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 이 청년이 말이 더디구나.....그는 바지 뒷춤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더니 우리에게 물었다. "무...엇...을... 드...실... 거...여...요?" 된장찌개 2인분을 주문하자 그는 또박또박 수첩에 적었다. 그리고 내려갔다. 조금 있으니 3층은 또 다른 손님들로 꽉 찼다.또 그 청년이 올라왔다. 그리고 수첩에 일일이 주문을 받아 적었다.나는 그가 손님들이 메뉴를 결정하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서있는 것이 안타가웠다. 다리가 얼마나 아플까....그리고 그 이쁜 청년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우리 곁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그가 선뜻 우리 곁으로 왔다. "3층까지 올라오기 힘들죠?" 내가 물으니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운...동...하...고... 좋...아...요..." 나는 가격표를 보며 음식값이 다른 곳보다 왜 더 저렴한지 물어봤다. 여긴 왜 이렇게 된장찌개도 싸고 두부찌개도 더 싸고 그래요?그가 또 웃으며 말한다. "우..리.. 엄...마...가... 그...러...시...는...데...요....그...래...도... 남...는...대...요...." 그는 백화점 창고에서 정리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여자친구가 몇 달전 그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이별의 아픔을 견디지 못한 그는 차마 그녀를 더 이상 보며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그녀가 없는 집으로 돌아와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나이는 스물 여섯. 이름은 박정식.그는 유난히 잘 웃었다.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어쩜 그렇게 어여쁜지? 그의 해맑은 웃음속에 잠겨 우리는 웬지 무엇엔가 감전되듯 짠~ 했다.저렇게 불완전한 모습을 가지고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청년.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항상 즐겁게 웃는 얼굴.너무도 정직해서 손님들에게 '그래도 남는다'는 일급비밀을 말해버리는 깨끗함.마치 나는 새까만 공해에 찌든 도시에서 신비스러운 안개로 뒤 덮힌 깊은 산골,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무릉도원을 산책하는 듯 영혼이 말갛게 헹궈진 느낌이었다. 마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난 듯 어딘가 멀리 여행이라도 하고 돌아 온 느낌이었다. 그래, 이 청년도 어쩌면 이 세상에 산책을 나온 천사인지도 몰라. 하느님께서 나 같은 사람들, 까만 공해로 오염되고 물욕에 찌든 사람들을 만나서 영혼을 말갛게 씻어주고 오렴!... 특별한 사명을 받고 이 지구에 파견된 천사인지도 몰라..... 구수한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고 우리가 떠나올 때 그는 문밖까지 배웅하며 아쉬워했다. "꼭... 다...시... 오...세...요..........."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기처럼 천천히 더듬더듬 말하는 그가 한없이 천진난만하게 보였다.손을 흔들며 방긋방긋 웃으며 우리를 마치 친구처럼 대해주던 청년. 영혼이 눈에 보일 듯 투명하고 이쁘던 그 청년이 가끔 생각난다. 그리고 불현듯 보고싶다. 어느 날 시간이 나면 나는 배낭을 짊어지듯 전철표 한 장 달랑 들고 그 청년을 향해 여행을 떠나야겠다. 카피라이터.'고정관념을 깨기'의 저자 (가톨릭 다이제스트 2002. 9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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