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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품
아버지의 유품 내가 늘 다다르고 싶은 만큼의 키를 가진 은행나무가 학교에 있었다. 그 은행나무는 내가 늘 허우적대는 만큼의 낙엽늪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짧은 학교생활내내 망연한 모습으로 기울어진 벤취에 나는 앉아 있었다. 영선을 만난건 그 무렵이다. 그녀는 거울에 비추어진 나와 같은 눈빛으로 낙엽늪과 은행나무의 우뚝한 키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먼저 그녀를 발견했고 다가간 것도 나였다. 몇학년이니? 나는 존대를 하지 않았다. 분명 그녀의 학년을 알 수 없었음에도 말이다. 그녀는 아무런 감정의 표정도 싣지 않은 얼굴 그대로 대답했다. 이학년인데,너는? 말문이 막혀 버린건 오히려 나였다. 그녀가 조금쯤은 갑작스런 내 접근에 머뭇거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미처 끝내기도 전이다. 나,나? 으응,나는...일학년.그렇지만 학교생활을 일년 더 빨리 시작했기때문에 아마 너와 같을거야. 그녀가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나와 친구하자. 영선은 그날부터 내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혜화동거리의 지도를 발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걸어다니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녀의 고민은 생성으로 비롯된 죽음이었으며.그 당시의 나는 세상의 썩은 부분을 너무도 많이 보아버린 것을 고민해야 했다. 내가 먼저 학교를 그만두었다. 곧이어 영선으로 부터도 같은 처지가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만날 수 없었다. 영선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내가 여전히 썩어있는 것들에 대한 노여움을 구석진 방에서 혼자 삭히고 있을 때였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차림새부터 달라져 있었다. 어여쁜 숙녀같은 옷차림이 아닌, 당장 오늘밤에라도 거리에서 잘 수 있는 허름함이었다. 등짐처럼 걺어진 빨간베낭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아주 낡은 흑백사진처럼 보였을 것이다. 커피마실래? 나는 흑백사진 속의 빨간 배낭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흑백의 영선은 빨강의 아구리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것은 절그럭하고 소리를 낸다. 한 뼘정도 크기의 대나무 통이다. 단명처럼 출구획 하나가 짧게 도려내어져있다. 저금통이다. 저금통이 분명하지만 나는 영선에게 묻는다. 그게 뭐야? 영선이 저금통,이라 대답하지 않고 아버지의 유품이라고 일상적어조로 말한다. 영선은 머리에 꼽혀있던 핀 하나를 빼서 유품의 틈새를 찌른다. 오백원짜리 동전이 투둑하고 두 개 떨어진다. 영선은 길건너에 있는 커피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고 남은 돈은 저만치에서 자리잡고 있는 걸인의 그릇에 담는다. 커피는 뜨겁다. 커피를 식히는 중이라는 듯 나는 종이컵을 들고만 있지만 영선은 내가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아주 오래전에 집을 떠난 아버지야. 엄마는 아버지의 소식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으셨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 엄마는 내게 말했어. 한 번 뵙고 오거라. 마지막 가시는 길이 될 듯 싶다. ...... 이 저금통에는 아버지가 내 생각을 하면서 오백원짜리를 한 개 두 개씩 넣으셨데. ...... 아버지가 천천히 말씀하셨어. 영주야. 이 저금통에 있는 동전을 두 가지의 용도로만 썼으면 좋겠구나. 하나는 네가 아무런 길을 가다가 다리라도 아프면 잠시라도 앉아서 종이커피를 마시는 거다. 그리고 남은 동전은 어디에고 앉아있는 걸인들에 주거라. 저금통의 동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내가 걸어야 될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처럼. 영선은 아직도 그 빨간배낭과 저금통을 걺어지고 다닌다. 덧 : 위 글은 저의 홈에 글을쓰시는 필명 민들레님의 글을 옮겨 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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