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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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y 님께서 남기신 글
숫타니파타 6

숫타니파타

이 <지혜와 자비의 말씀>은 <숫타 니파아타> (Sutta-nipata)의 번역이다. <숫타 니파아타>는 "경(經)의 집성"을 의미한다. 불교의 그 많은 경전 중에서도 최초에 이루어진 것이 바로 이 <숫타 니파아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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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대품(大品) - 2

7. 세에라 / 8. 화살(矢) / 9. 바아셋타 / 10. 코오카알리야/11. 나아라카 / 12. 두 가지 관찰



7. 세에라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어느 때 스승께서는 수행승 천 이백 오십 인과 함께 앙굿타라아파를 두루 다니시다가 아아파나라고 하는 앙굿타라아파의 한 마을에 들어가셨다. 머리 딴(結髮) 행자 케니야는 생각했다.
`석가 족의 아들인 사문 고오타마는 석가 족의 집에서 출가하여, 수행승 천 이백 오십 인의 큰 무리를 이끌고 앙굿타라아파를 편력하다가 아아파나에 이르렀다. 그 고오타마에게는 다음과 같은 좋은 소문이 있다. 즉 그는 참사람, 깨달은 사람, 지혜와 행을 갖춘 사람, 행복한 사람, 세상을 알아버린 사람, 위없는 사람, 사람들을 길드리는 이(御者), 신과 인간의 스승, 눈 뜬 사람, 거룩한 스승이라고 불리운다. 그는 스스로 깨닫고 증명하여 신,악마,범천을 포함한 이 세계와 사문,바라문,신,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가르침을 베푼다. 그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고, 글과 뜻이 잘 갖추어진 가르침과 원만하고 청정한 행을 설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훌륭하고 존경받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영광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머리 딴 행자 케니야는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가서 인사를 드렸다. 기쁘고 기억할만한 인사를 나눈후에 한편에 가 앉았다. 스승께서는 머리 딴 행자 케니야에게 법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지도하시고, 용기를 주어 기쁘게 해 주셨다. 케니야는 스승께 이 같이 말씀드렸다.
"고오타마께서는 수행승의 무리와 함께 내일 제가 올리는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스승은 케니야에게 말씀하셨다.
"케니야여, 수행승의 무리는 많아서 천 이백 오십 인이나 됩니다. 또 당신은 바라문들을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케니야는 거듭 스승께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수행승의 무리는 천 이백 오십 인이나 되고, 또 저는 바라문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오타마께서는 수행승들과 함께 내일 제가 올리는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스승은 케니야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케니야여, 수행승의 무리는 많아서 천 이백 오십 인이나 되며, 당신은 바라문들을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케니야는 세 번째 스승께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수행승의 무리는 많아서 천 이백 오십 인이나 되며, 또 저는 바라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오타마께서는 그들과 함께 오셔서 제가 올리는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스승께서는 침묵으로써 승낙하셨다. 케니야는 스승께서 승낙하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떠나 자기의 암자로 갔다. 그리고는 친구와 친척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십시오. 나는 사문 고오타마를 그 수행승의 무리와 함께 내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나를 도와 주십시오."
케니야의 친구와 친척들은 승낙하고, 어떤이는 솥을 걸고 나무를 쪼개며, 어떤이는 그릇을 씻고 독에 물을 길어다 붓고 혹은 자리를 준비했다. 그리고 케니야 자신은 흰막을 친 원당(圓堂)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때 세에라 바라문은 아아파나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3베에다의 깊은 뜻을 깨달아 어휘, 활용론, 음운론, 어원론과 제4의 아타르바 베에다와 제5 고담(古譚)의 어귀(語句)와 문법에 통달하고, 순세론(順世論)과 위인의 관상에 통달했으며, 삼백명의 소년에게 베에다를 가르치고 있었다. 케니야는 세에라 바라문을 신봉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그때 세에라 바라문은 삼백 명의 소년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오래 앉아 있었기 때문에 생긴 피로를 풀기 위해 여기저기 산책을 하다가 케니야의 암자에 가까이 갔었다.
세에라 바라문은 케니야의 암자에 사는 머리 딴 행자들이, 어떤 이는 솥을 걸고 나무를 빠개며, 어떤이는 그릇을 씻고 독에 물을 길어다 붓고 혹은 자리를 준비하며, 케니야는 몸소 원당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케니야에게 물었다.
"케니야, 당신 아들이 장가라도 가는 것입니까? 혹은 딸이 시집이라도 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큰 제사가 있습니까? 또는 마가다왕 세니야 빔비사아라가 군대를 이끌고 내일 식사라도 하러 오게 돼 있습니까?"
"세에라시여, 저는 아들을 장가보내지도 않고 딸을 시집보내지도 않으며, 또 마가다왕 세니야 빔비사아라를 초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게는 머지 않아 큰 제사가 있습니다. 석가 족의 아들인 사문 고오타마가 석가 족의 집에서 출가하여 앙굿타라아파나라를 두루 다니다가 그를 따르는 수행승 천 이백오십 인과 함께 아아파나에 오셨습니다. 그 고오타마에게는 이런 좋은 소문이 따르고 있습니다. 즉, 그 스승은 참사람, 깨달은 사람, 지혜와 행을 갖춘 사람, 행복한 사람, 사람을 길들이는 이, 신과 인간의 스승, 눈뜬 사람, 거룩한 스승이라고들 합니다. 저는 그분을 수행승과 함께 내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케니야여, 당신은 그를 눈 뜬 사람이라 부릅니까?"
"세에라여, 나는 그를 <눈뜬 사람>이라 부릅니다."
"케니야여, 당신은 그를 <눈뜬 사람>이라 부릅니까?"
"세에라여, 나는 그를 <눈 뜬 사람>이라 부릅니다."
그 때 세에라 바라문은 생각했다.

`눈 뜬 사람이란, 이 세상에서 그 목소리를 듣기조차 힘든 일이다. 그런데 우리들 성전(聖典)속에 위인의 상(相)이 설흔 두 개 전해지고 있다. 그것을 갖추고 있는 위인에게는 단 두 가지 길이 있을 뿐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 만일 그가 재가(在家)의 생활을 한다면, 그는 전륜왕(轉輪王)이 되어 정의를 지키는 법왕, 사방의 정복자로서 국토백성을 안정시키고 칠보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바퀴(輪)라는 보배, 코끼리,말,구슬,여자,재산 그리고 지휘자라는 보배가 따를 것이다. 또 그에게는 천 명 이상의 아들이 있어 모두가 용감무쌍하며 외적을 쳐부순다. 그는 이 대지(大地)를 사해(4海)의 끝에 이르기까지 무력을 쓰지 않고 정의로써 정복하고 지배한다. 그러나 그가 만일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된다면 참사람, 깨달은 사람이 되어 이 세상 온갖 번뇌의 가림을 없앨 것이다."

세에라는 케니야에게 물었다.
"케니야여, 그럼 그 참사람, 깨달은 사람인 고오타마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케니야는 바른 팔을 들어 세에라 바라문에게 말했다.
"세에라여, 저쪽으로 가면 푸른 숲이 있습니다. 그 곳에 부처님이 계십니다."

그리하여 세에라 바라문은 삼백 명의 소년들과 함께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 때 세에라 바라문은 같이 온 바라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천천히 걸어 소리를 내지 말고 따라 오너라. 모든 스승은 사자처럼 홀로 거니는 분이며, 가까이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사문 고오타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너희들은 중간에 참견을 해서는 안된다.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세에라 바라문은 거룩하신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갔다.

스승께 절을 하고 나서 기쁘고 기억할 만한 인사를 나눈 뒤 한편에 가 앉았다. 그리고 세에라 바라문은 스승의 몸에 설흔 두 가지 위인의 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폈다. 그는 스승의 몸에서 단 두 가지 상을 내놓고 설흔 두 가지 위인의 상이 거의 갖추어져 있음을 보았다. 그 두 가지 상은 그것이 과연 스승께 있는지 없는지 의심되어 <눈 뜬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 두 가지란 몸의 막(膜) 속에 들어 있는 음부(隱部)와 광장설상(廣長舌相)이었다.
그 때 스승은 생각했다.
`이 세에라 바라문은 내 몸에 있는 설흔 두 가지 위인의 상을 거의 보았지만, 단 두 가지는 보지 못했다.
몸의 막속에 들어 있는 음부와 광장설의 두 위인상은 그것이 과연 내게 있는지 없는지 의심하고, 눈뜬 사람임을 믿지 않는구나.’
그래서 스승께서는 세에라 바라문이 몸의 막 속에 들어 있는 음부를 볼 수 있도록 신통(神通)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혓바닥으로 양쪽 귓속을 아래 위로 핥으시고, 양쪽 콧구멍을 아래 위로 핥으시며, 또 이마를 혀로 핥으시었다.

세에라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했다.
`사문 고오타마는 설흔 두 가지 위인상을 완전히 갖추고 계시다. 그러나 나는 그가 부처님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나는 늙고 나이가 많아, 스승이나 또는 그의 스승인 바라문들이 <모든 존경받을 사람, 깨친 사람은 자기가 칭찬받을 때는 자신을 나타낸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럼, 나는 적당한 시로써 사문 고오타마를 그 앞에서 찬탄하리라.’
그래서 세에라 바라문은 적당한 시로써 스승의 면전에서 찬탄하였다.

"스승이시여, 정력이 있는 분이시여, 당신은 몸이 완전하고 빛이 나며 태생도 좋고 보기에도 아름답습니다. 금빛으로 빛나며 이는 아주 흽니다."


(549) 그리고 태생이 좋은 사람이 갖추는 용모는 모두 위인의 상으로서 당신 몸에 있습니다.

(550) 당신은 눈이 맑고 얼굴도 보기 좋으며, 신체는 크고 단정하며 빛나 사문들 속에서도 태양처럼 빛납니다.

(551) 당신은 보기에도 아름다운 수행자(비구)로 그 살갗은 황금 빛입니다. 이렇듯 용모가 훌륭한데 어찌 사문될 필요가 있습니까?







(552) 당신은 전륜왕이 되어 군대를 거느리고 사방을 정복하여 잠부주(인도)의 지배자가 되셔야 합니다.







(553) 왕족이나 시골의 왕들은 당신께 충성을 맹세할 것입니다. 고오타마시여, 왕 중의 왕으로서, 인류의 제왕으로서 통치를 하십시오."







(554) 스승은 대답했다.



"세에라여, 나는 왕이로되 위 없는 진리의 왕입니다.



진리로써 바퀴(輪)를 굴리는 것입니다. 거꾸로 돌 수 없는 바퀴를."







(555) 세에라 바라문이 말했다.



"당신은 정각자(正覺者)라고 스스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오타마시여, 당신은`위없는 진리의 왕이고, 진리로써 바퀴를 굴린다’고 말씀하십니다.







(556) 그렇다면 누가 당신의 장군입니까? 스승의 상속자인 제자는 누구입니까? 이 굴려진 법 바퀴(法輪)를 누가 당신의 뒤를 이어 굴릴 것입니까?"







(557) 스승은 대답했다.



"세에라여, 내가 굴린 위없는 법 바퀴를 사아리풋타(舍利佛)가 굴릴 것입니다. 그는 완전한 사람을 따라 나타난 사람입니다.







(558) 나는 알아야 할 것을 이미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이미 닦았으며, 끊어야 할 것을 이미 끊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부처입니다.



바라문이여.







(559) 내게 대한 의혹을 푸십시오. 바라문이여.



그리고 나를 믿으십시오.



깨달은 사람들을 만나기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560) 그들(눈뜬 사람)이 가끔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그대들에게는 만나보기 어려운 일인데, 나는 바로 그 정각자입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번뇌의 화살을 꺾어 버린 위없는 사람입니다.







(561) 나는 신성한 사람이며, 비길 데 없고, 악마의 군대를 때려부셨으며, 모든 적을 항복시켰고, 아무것에도 두려움 없이 기뻐합니다."







(562) 세에라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눈이 있는 이의 말씀을 들어라.







그는 번뇌의 화살을 꺾어 버린 사람이며 위대한 영웅이시다.



마치 사자가 숲속에서 포효하는 것과 같다.







(563) 신성한 분, 비길데 없고 악마의 군대를 쳐부순 이를 보고, 누가 믿지 않을 것인가. 이를테면, 살갗이 검은 종족 출신이라도 믿으리라.







(564) 따르고자 하는 자는 나를 따르라. 그리고 따르고 싶지 않은 자는 떠나 가거라. 나는 뛰어난 지혜있는 분에게 출가하겠다."







(565) 세에라의 제자들이 말했다.



"만일 스승님께서 바로 깨달은 이의 가르침을 기뻐하신다면, 저희들도 또한 뛰어난 지혜있는 분에게 출가하겠습니다."







(566) 세에라가 스승께 말했다.



"저희들 삼백 명의 바라문은 합장하고 청합니다. 스승이시여, 우리들은 당신 곁에서 깨끗한 행을 닦겠습니다."







(567) 스승이 말했다.



"세에라여, 깨끗한 행이 잘 설해져 있습니다. 그것은 눈앞에 당장 과보를 가져 옵니다. 도를 닦는 사람이 게으르지 않고 출가하여 청정행을 닦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닙니다."







(568) 세에라 바라문은 제자들과 함께 스승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그 때 머리 딴 행자 케니야는 그날 밤이 지나자 자기 암자에서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스승께 시간이 된 것을 알렸다.



"고오타마시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양 준비가 되었습니다."



스승은 오전 중에 속옷(內衣)과 겉옷(重衣)을 입고 바리때를 드시고 머리 딴 행자 케니야의 암자로 가셨다. 그리고 수행승의 무리와 함께 미리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케니야는 부처님을 비롯하여 수행승들에게 손수 맛좋은 음식을 나르면서 마음껏 들도록 권했다. 그리고 케니야는 스승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바리때에서 손을 떼시자 한층 낮은 자리에 앉았다. 스승은 다음과 같은 시로써 케니야에게 감사의 말씀을 하셨다.







"불에 대한 공양은 제사 중에도 가장 으뜸입니다.



사아비트리이는 베에다의 싯귀(詩句)중에서 으뜸이고, 왕은 사람 중에서 으뜸이며, 큰 바다(大洋)는 모든 강 중에서도 으뜸이듯이."







(569) 달은 뭇별 중에서 으뜸이며, 태양은 빛나는 것 중에서 으뜸이고, 스님들은 공덕을 바라고 공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으뜸인 것입니다."







(570) 스승은 이러한 시를 읊어 케니야에게 감사의 뜻을 말씀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시었다.



세에라 장로는 자기를 따르던 무리들을 떠나 홀로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여 얼마 안 가서 - 여러 선남자들이 그것을 얻으려고 떳떳하게 집을 나와 집없이 사는 것인데 - 위없는 청정행의 궁극을 현세에서 스스로 깨닫고 증명하고 구현하며 세월을 보냈다.



`태어나는 일은 끝났다. 청정한 행은 이미 완성됐다.



할일을 다 마쳤다. 이제 다시는 이러한 생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세에라 장로는 그의 무리와 함께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세에라 장로는 그의 무리들과 함께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갔었다.



그리고 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스승께 합장하여 다음의 시로써 여쭈었다.



"스승이시여, 눈이 있는 분이시여, 오늘부터 여드레전에 우리는 당신께 귀의했습니다만, 일곱밤을 지나 우리는 당신의 가르침속에서 안정을 얻었습니다.







(571) 당신은 깨달으신 분입니다. 당신은 스승이십니다. 당신은 악마의 정복자이며 현자이십니다. 당신은 번뇌의 잠재적 가능성을 끊고, 몸소 건너시고 또 이 사람들을 건네 주십니다.







(572) 당신은 장애를 넘어서고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 버렸습니다. 당신은 집착없는 사자이십니다. 무서워 떠는 일이 없으십니다.







(573) 이들 삼백 명의 수행승은 합장하고 서 있습니다. 영웅이시여, 발을 뻗쳐 주십시오. 여러 용(龍 = 行者)들로 하여금 스승께 예배드리게 하렵니다."











8. 화살(矢)







(574) 이 세상에서 사람의 명은 정해 있지 않아 얼마 사는지 모른다. 애처롭고 짧아 고뇌로 엉켜 있는 것이다.







(575) 태어난 것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늙으면 죽음이 온다. 실로 생이 있는 자의 운명은 이런 것이다.







(576)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질 위험이 있다. 그와 같이 태어난 자는 죽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는 항상 죽음의 두려움이 있다.







(577) 이를테면, 옹기장이가 만든 질그릇이 마침내는 모두 깨어지고 말 듯이 사람의 목숨도 또한 그렇다.







(578) 젊은이도 장년도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모두 죽음에는 굴복해 버린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579) 그들은 죽음에 붙잡혀 저 세상으로 가지만, 아비도 그 자식을 구하지 못하고 친척도 그 친척을 구하지 못한다.







(580) 보라. 친척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지만, 사람은 하나씩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사라져 간다.







(581) 이렇듯 세상 사람들은 죽음과 늙음으로 인해서 해를 입는다. 그러나 슬기로운 이는 세상의 참모습(實相)을 알고 슬퍼하지 않는다.







(582) 그대는 온 사람의 길을 모르고, 또 간 사람의 길을 모른다. 그대는 생과 사 양극을 보지 않고 부질없이 슬피 운다.







(583) 미망(迷妄)에 붙들려 자기를 해치고 있는 사람이 울고불고해서 무슨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현자도 그렇게 할 것이다.







(584) 울고 슬퍼하는 것으로서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다. 다만 그에게는 더욱더 괴로움이 생기고 몸만 여윌 따름이다.







(585) 스스로 자신을 해치면서 몸은 여위고 추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울고 슬퍼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586) 근심을 버리지 않은 사람은 점점 더 고뇌를 받게 된다. 죽은 사람 때문에 운다는 것은 근심에 사로잡힌 것이다.







(587) 또한 자신이 지은 업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라. 살아 있는 자는 죽음에 붙잡혀 떨고 있지 않은가.







(588)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염원할지라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기대에 어긋나는 것도 이와 같느니라.



보라, 세상의 저 모습을!







(589) 가령 사람이 백년을 살거나 그 이상을 산다 할지라도 마침내는 친족들을 떠나



이 세상의 생명을 버리게 된다.







(590) 그러므로 존경하는 사람의 말씀을 듣고, 죽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는`그는 이미 내 힘이 미치지 못하게 되었구나’라고 깨달아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말아라.







(591) 이를테면, 집에 불이 난 것을 물로 꺼버리듯이,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들은 걱정이 생겼을 때는 이내 지워 버린다. 마치 바람이 솜을 날려 버리는 것과 같이.







(592) 자신의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은 슬픔과 욕심과 걱정을 버리라. 자기 번뇌의 화살을 뽑으라.







(593)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거리낌 없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모든 걱정을 초월하고, 근심 없는 자, 평안에 돌아간 자가 될 것이다.











9. 바아셋타







(594)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어느 때 거룩한 스승께서는 잇차아낭갈라 숲에 살고 계시었다. 그 때 재산이 많고 저명한 바라문들이 그곳에 많이 살고 있었다. 즉, 찬킨 바라문, 타아룻카 바라문, 포옥카라사아치 바라문, 자아눗소오니 바라문, 토오데야 바라문, 이 밖에 저명한 바라문들이었다.



그 때 바아셋타와 바아라드바아자라고 하는 두 젊은이가 오랫동안 앉아 있었기 때문에 생긴 피로를 없애기 위해, 여기저기 거닐면서 논쟁을 벌였다.



"도대체 바라문이란 어떤 것인가?"



바아라드바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계(父系)와 모계(母系) 양쪽이 다 유서깊은 순결한 모태에 깃들기를 칠대(7代)의 조상에 이르기까지 혈통에 대해서 지탄이나 비난 받은 일이 없는 이런 사람을 바라문이라 합니다."



바아셋타는 말했다.



"사람이 계율을 지키며 덕행을 갖추고 있다면, 바로 이 사람이 바라문입니다."



바아라드바아자는 바아셋타를 설득할 수 없었고, 바아셋타도 바아라드바아자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아셋타는 바아라드바아자에게 말했다.



"바아라드바아자여, 석가 족의 아들인 사문 고오타마는 출가하여 이곳 잇차아낭갈라 숲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고오타마에게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떠돌고 있습니다. 즉, 그 스승은 존경할 만한 사람, 눈뜬 사람, 지혜와 덕행을 갖춘 사람, 행복한 사람, 세상을 안 사람, 위없는 사람, 사람들을 길들이는 이, 신과 인간의 스승, 눈이 열린 부처님, 거룩한 스승이라고 합니다.



바아라드바아자여, 사문 고오타마에게로 가 봅시다.



거기 가서 그분에게 이것을 물어 봅시다. 그의 대답에 따라 우리는 그것을 믿읍시다."



그들은 스승이 계신 곳으로 찾아 갔다. 스승께 절을 하고 나서, 기쁘고 잊을 수 없는 말들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바아셋타 바라문은 다음과 같은 시로써 스승께 여쭈었다.







"우리 두 사람은 3베에다의 학자라고 스승께서도 인정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저는 포옥카라사아치의 제자이고 이 사람은 타아루카의 제자입니다.







(595) 3베에다에 쓰여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완전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에다의 어귀(語句)와 문법에 통달했고 독송도 스승에게 견줄 만합니다.







(596) 고오타마시여, 그러한 우리가 태생에 대한 논쟁을 했습니다. `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된다’고 바아라드바아자는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눈이 있는 분이시여, 이런 사정임을 알아 주십시오.







(597)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눈뜬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스승께 물으러 온 것입니다.







(598) 사람들이 보름달을 향해 합장하고 예배하며 공경하듯이, 세상 사람들은 고오타마를 예배하고 공경합니다.







(599) 세상의 눈으로 출현하신 고오타마에게 우리는 묻습니다.



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바라문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도록."







(600) 스승은 대답하셨다.



"바아셋타여, 그대들을 위해 모든 생물에 대한 태생의 구별을 차례대로 설명해 주리라.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1) 풀이나 나무에도 종류의 구별이 있는 줄을 알아라.



그러나 그들은,



`우리는 풀이다’라든가,



`우리는 나무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의 특징은 태생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태생은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2) 또 구더기나 귀뚜라미로부터 개미에 이르는 것들에게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태생은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3)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네발 달린 짐승에게도 종류의 구별이 있다는 것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태생은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4) 배로 기어 다니는 길이가 긴 것들에게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태생은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5) 물속에 태어나 물에서 사는 물고기들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태생은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6) 그리고 날개를 펴 하늘을 날으는 새들에게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태생은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7) 이와 같은 생물에 있어서는 태생에 기인한 특징이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인류에게는 태생에 기인한 특징이 다를 수 없다.







(608) 머리카락이나 머리,귀,눈,입,코,입술이나 눈썹에 대해서도.







(609) 목이나 어깨,배,등,궁둥이,가슴,음부나 성교에 대해서도.







(610) 손이나 발,손가락,손톱,종아리,넓적다리,얼굴색이나 음성에 대해서도, 다른 생물처럼 태생에 기인한 특징의 구별이 인류에게는 결코 없다.







(611) 몸을 받은 생물 사이에는 각기 구별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그런 구별이 없다. 인간 사이에서 구별이 나타나는 것은 다만 그 명칭뿐이다.







(612) 인간 가운데서 소를 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농부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아라. 바아셋타여.







(613) 인간 가운데서 여러 가지 기능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기능인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아라.



바아셋타여.







(614) 인간 가운데서 사고 파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장사치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아라.



바아셋타여.







(615) 인간 가운데서 남의 일을 해주고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고용인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아라.



바아셋타여.







(616) 인간 가운데서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도둑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아라. 바아셋타여.







(617) 인간 가운데서 무술(武術)에 의해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사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아라. 바아셋타여.







(618) 인간 가운데서 사제직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제관(祭官)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아라. 바아셋타여.







(619) 인간 가운데서 고을이나 나라를 차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왕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아라. 바아셋타여.







(620) 나는 바라문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사람을 바라문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는`그대여, 라고 불리는 사람’이라 부른다. 그는 무엇인가 소유물에 걸리어 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집착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1) 모든 속박을 끊고 겁내지 않으며, 집착을 초월해 붙잡혀 있지 않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2) 가죽 끈과 가죽 줄을 고삐와 함께 끊어 버리고 장애를 없애 눈 뜬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3) 죄 없이 욕을 먹고 구타나 구속을 참고 견디며, 인내력이 있고 마음이 용맹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4) 성내지 않고 도덕을 지키며, 계율에 따라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몸을 안정시켜 <최후의 몸>에 이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5) 연꽃잎에 이슬처럼, 송곳 끝에 겨자씨처럼, 온갖 욕정에 더럽히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6) 현세에서 이미 자기의 고뇌가 소멸된 것을 알고, 무거운 집을 내려 놓고 걸림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7) 지혜 깊고 총명하며 온갖 길에 통달해 최고의 목적에 도달 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8) 재가자나 출가자 아무하고도 섞이지 않고, 집 없이 편력하며 욕심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9) 힘 세거나 약한 어느 생물에게도 폭력을 쓰지 않고, 또 죽이거나 죽이도록 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0) 적의를 품은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에게 대적하는 마음이 없고, 폭력을 휘두르는 자와 함께 있으면서도 마음이 온화하며, 집착하는 자들과 같이 있으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1) 겨자씨가 송곳 끝에서 떨어지듯이, 애착과 증오와 거만과 거짓을 털어 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2) 거칠지 않고 사연을 전하는데 진실한 말을 하며, 말로써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3) 이 세상에서 길고 짧거나, 가늘고 굵거나,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막론하고, 주지 않은 것은 어떤 물건이 라도 갖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4) 현세도 내세도 바라지 않고, 욕심도 걸림도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5) 집착이 없고 완전히 깨달아 의혹이 없이 불사(不死)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6) 이 세상의 재앙이나 복덕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근심과 티가 없이 깨끗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7) 구름에 가리워 있지 않은 달처럼, 깨끗하고 맑아 환락의 생활이 끝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8) 이 힘들고 어려운 길, 윤회, 헤매임을 넘고 피안에 이르러 정신을 안정시키고, 욕망도 의욕도 집착도 없이 마음이 평안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9) 이 세상의 욕망을 끊고 집을 떠나 편력하며, 욕망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0)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끊고 집을 떠나 편력하며 애착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1) 인간의 인연을 끊어 버리고 천상의 인연도 벗어나 모든 굴레를 벗어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2) 쾌락도 쾌락 아닌 것도 버리고, 맑고 깨끗해져 얽매임 없이 온 세상을 이겨낸 영웅,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3)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의 생사를 알고, 집착 없이 행복한 사람, 깨달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4) 신도 귀신(간다르바)도 인간도 그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 번뇌의 더러움을 멸해 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5) 앞에도 뒤에도 중간에도 한 물건도 가지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6) 황소처럼 늠늠하고 기품있는, 영웅,대선인(大仙人),승리자,욕망없는 사람,목욕자,깨달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7) 전생 일을 알고, 천국과 지옥을 보며, 생존을 멸(滅)해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8) 세상에서 쓰는 이름이나 성은 통칭(通稱)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태어난 그 때마다 임시로 붙여져 전해지는 것이다.







(649) 성명이 임시로 붙여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릇된 선입견을 오래 가지게 된다.



모르는 사람은 말한다.



`태생에 의해서 바라문이 된다’고.







(650)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되고,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







(651)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능인이 되며, 행위에 의해 장사치가 되고, 또한 행위에 의해 고용인이 된다.







(652) 행위에 의해 도둑이 되고, 행위에 의해 무사가 되며, 행위에 의해 제관이 되고,



행위에 의해 왕이 된다.







(653) 현자(賢者)는 이와 같이 행위를 사실 그대로 본다. 그들은 <연기(緣起)>를 보는 자이며, 행위와 그 과보를 잘 알고 있다.







(654) 세상은 행위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로 인해서 존재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행위에 매어있다. 마치 달리는 수레가 쐐기에 의해 매어 있듯이.







(655) 고행과 청정한 행과 감관의 억제와 자제, 이것으로 바라문이 된다.



이것이 으뜸가는 바라문이다.







(656) 지식인들이 볼 때 3베에다를 갖추고 마음 편안하여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사람이 범천이며 제석(帝釋)이다.



바아셋타여, 이러한 줄을 알아라."







(657)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바아셋타와 바아라드바아자 청년은 스승께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고오타마시여, 훌륭하십니다, 고오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키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이, 그리고`눈이 있는 자는 빛을 볼 것이다’하면서 어두운 밤에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신 고오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고오타마와 진리와 승가에 귀의하겠습니다. 고오타마께서는 저희를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귀의한 재가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10. 코오카알리야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아밧티이의 제타 숲, 고독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는 장자의 집에 계시었다. 그 때 수행승 코오카알리야는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갔다. 스승께 인사드린 후 한쪽으로 가서 앉아 말씀드렸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사아리풋타와 모옥갈리아나는 사뙨 생각을 가지고 나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승은 수행승 코오카알리야에게 일렀다.



"코오카알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코오카알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사아리풋타와 모옥갈라아나는 선량한 사람들이다."



코오카알리야는 거듭 말했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을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다만, 사아리풋타와 모옥갈라아나는 사뙨 생각을 지니고 나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스승은 다시 수행승 코오카알리야에게 말씀하셨다.



"코오카알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사아리풋타와 모옥갈라아나를 믿고 사랑하여라,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코오카알리야는 세 번째로 말씀드렸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을 믿고 의지합니다만, 사아리풋타와 모옥갈라아나는 사뙨 생각을 가지고 나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스승께서도 세 번 같은 말씀을 하셨다.



"코오카알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그들을 믿고 사랑하여라,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러자 수행승 코오카알리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께 절하고 바른쪽으로 돌아 나가버렸다. 그는 나가자마자 온 몸에 겨자씨만한 종기가 생겼다. 처음에는 겨자씨만 하던 것이 차츰 팥알만 해졌다. 팥알만 하던 것이 또 콩알만 해졌다. 그러더니 대추씨만 해지고 대추알만 해졌다. 이와 같이, 감자만 해지고, 덜익은 모과 열매만 해지고, 익은 모과만 하던 것이 마침내 터져서 고름과 피가 되어 흘렀다.코오카알리야는 마침내 그 병고 때문에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사아리풋타와 모옥갈라아나에게 적의를 품었기 때문에 죽어서 홍련(紅蓮)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 때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梵天)은 한밤중이 지났을 무렵, 아름다운 얼굴로 제타 숲을 두루 비추면서 스승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인사를 드린 뒤 한편에 서서 스승께 사뢰었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수행승 코오카알리야는 죽었습니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수행승 코오카알리야는 사아리풋타와 모옥갈라아나에게 적의를 품었기 때문에 죽어서 홍련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이렇게 말하며 스승께 절하고 바른쪽으로 돌아 사라졌다.



날이 밝자 스승께서는 여러 수행승에게, 어제 밤에 범천이 왔었던 일을 말씀하셨다. 그 때 한 수행승이 이렇게 말했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홍련지옥의 수명은 얼마나 됩니까?"



"수행승이여, 홍련지옥의 수명은 길다. 그것을 몇년이라든가, 몇 백년, 몇 천년, 몇 십만년이라고 헤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그렇지만 비유로써 설명하실 수는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 그렇게는 말할 수 있다."



하시면서 스승께서는 말씀하셨다.



"수행승이여, 이를테면 코오살라 나라의 말(斗)로 되서 스무 카아리카의 깨(한수레분)가 있는데, 그것을 꺼낸다고 하자. 한 사람이 백년을 지날 때마다 한 알씩 꺼내는 그런 방법으로 해서, 그 스무 카아리카의 깨를 다 꺼낸다 하더라도 한 압부다지옥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스무 압부다지옥은 한 니랍부다지옥과 같다. 그리고 스무 니랍부다지옥은 한 아바바 지옥이며, 스무 아바바지옥은 한 아하하지옥, 스무 아하하지옥은 한 아타타지옥이며, 스무 아타타지옥은 한 황련 (黃蓮)지옥과 같고, 스무 황련지옥은 한 백수련(白睡蓮)지옥과 같으며, 스무 백수련지옥은 한 청련(靑蓮)지옥, 스무 청련지옥은 한 백련지옥과 같다.



그래서 스무 백력지옥은 한 홍련지옥에 해당된다.



수행승들이여, 그런데 코오카알리야는 사아치풋타와 모옥갈라아나에게 적의를 품었기 때문에 홍련지옥에 떨어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인 스승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신 뒤,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657)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그 입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자는 욕설을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마는 것이다.







(658) 비난받을 사람을 칭찬하고, 또 칭찬해야 할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 그는 입으로 죄를 더하고 그 죄 때문에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659) 도박으로 재산을 잃는 자는 가령 자신까지를 포함해 모든 것을 잃는다 하더라도 그 불행은 오히려 적은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 악의 를 품은 사람의 죄(불행)는 아주 무거운 것이다.







(660) 악담 또는 악의를 가지고 성인을 비방하는 사람은, 십만과 삼십 육 니랍부다지옥과 다섯 압부다지옥에 떨어진다.







(661) 거짓말을 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또 했으면서 안 했다고 하는 자도 마찬가지다. 둘 다 똑같이 행동이 비열한 사람들이라, 죽은 후에는 같은 내세(來世)를 갖는다.(지옥에 떨어진다.)







(662) 남을 해칠 마음없이 깨끗하고 더럽히지 않은 사람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러한 악이 돌아온다. 바람을 거슬러서 먼지를 날리는 것처럼.







(663) 여러 가지 탐욕의 대상에 빠져, 신앙심도 없고 인색하며, 불친절하고 이기적이며 이간질을 하는 사람은 말로써 남을 때린다.







(664) 입이 더럽고 부실하며 천한 자여, 산 것을 죽이고 사특하여 악한 행위를 하는 자여, 야비하고 불량하며 덜된 자여, 이 세상에서 말을 너무 말아라. 그대는 지옥에 떨어지라.







(665) 그대는 먼지를 뿌려서 해(害)를 끌어 들이고, 착한 사람들을 비난하여 죄를 지으며, 온갖 나쁜 일을 하여 오랫동안 깊은 구렁(지옥)에 빠진다.







(666) 그 어떤 업(業)도 멸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되돌아와 그 임자가 그것을 받는다. 어리석은 자는 죄를 짓고 내세에서 그 괴로운 과보를 받는다.







(667) 지옥에 떨어진 자는 쇠꼬창이로 꿰이고, 날카로운 칼이 달린 철창에 찔린다.



또한 불에 달은 쇳덩이를 전에 지은 업에 알맞는 음식으로써 먹어야 한다.







(668) 지옥의 옥졸들은`잡아라!’`때려라!’ 할 뿐 부드러운 말을 걸어 주지 않으며,상냥한 얼굴로 대해 주지 않고, 의지가 되어 주지 않는다.



지옥에 떨어진 자는 깔려진 숯불 위에 앉아 불붙는 화염 속에 들어간다.







(669) 또한 그곳에서 지옥의 옥졸들은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을 철망으로 몰아 넣어 쇠망치로 내려 친다.



그리고는 새까만 암흑 속에 두는데, 그 어둠은 안개처럼 끝없이 퍼져 있다.







(670) 또 다음에는 그 화염이 타오르는 구리솥에 들어간다. 오랫동안 그 끓는 가마솥 안에서 익혀지면서 떴다가라앉았다 한다.







(671) 고름과 피로 가득찬 솥이 있어, 죄를 범한 자는 그 속에서 끓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어느쪽으로 가든지 피고름 때문에 더럽혀진다.







(672) 구더기가 사는 물솥이 있어, 죄를 범한 자는 그 안에서 익어 간다. 나오려 해도 붙잡을 것이 없다.



그 솥은 안으로 굽고 둘레가 모두 한결같기 때문이다.







(673) 날카로운 칼날로 된 숲이 있어, 지옥에 떨어진 사람이 그 속에 들어가면 팔다리가 잘린다. 옥졸들은 꼬챙이로 혀를 꿰어 잡아 다니면서 괴롭힌다.







(674) 또 지옥에 떨어진 자는 예리한 면도칼이 있는 베다라니이 강에 이른다. 어리석은 무리들은 나쁜 일을 하고 죄를 범함으로써 그곳에 떨어진다.







(675) 그곳에는 검은 개, 점박이 개, 검은 까마귀 떼와 여우들이 있어, 울부짖는 사람들을 뜯어 먹는다. 또 독수리 까치들도 살을 쪼아 먹는다.







(676) 죄를 범한 자가 받는 지옥의 생태는 실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명이 남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을 하고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677) 홍련지옥에 떨어진 자의 수명은 짐차에 실은 깨알의 수만큼 된다고 지자(智者)들은 헤아렸다. 즉 그 햇수는 오조년(5兆年)과 오천만 년인 것이다.







(678) 여기 말한 지옥의 고통이 아무리 오래 계속된다 할지라도 그 동안은 지옥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청정하고 어질고 착한 미덕을 위해 항상 말과 마음을 지켜야 한다.











11. 나아라카







-서(序)-







(679) 아시타 선인(仙人)은 한낮의 휴식 때에, 정결한 옷을 입은 설흔 명의 신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옷을 벗어 들고 공손히 제석천(帝釋天)을 극구 찬탄하는 것을 보았다.







(680) 기뻐서 뛰노는 신들을 보고 선인은 조심스레 물었다.



"신들이 기쁨에 넘쳐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왜 당신들은 옷을 벗어 흔들고 있는 것입니까?







(681) 만일 아수라와의 싸움에서 신들이 이기고 아수라가졌다 할지라도 몸의 털을 곤두 세울 만큼 그토록 기뻐할 수는 없을 터인데, 어떤 희귀한 일이 있기로 그처럼 기뻐하는 것입니까?







(682) 그들은 소리치고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하고 손뼉을 치면서 춤을 춥니다.



나는 수미산 꼭대기에 살고 있는 당신들께 묻습니다. 존경하는 분들이여, 제 궁금증을 어서 풀어 주십시오."







(683) 신들은 대답했다.



"비할 데 없이 묘한 보배인 저 보살(미래의 부처님)은 모든 사람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인간세계에 태어 났습니다.



석가 족 마을 룸비니이 동산에.



그래서 우리는 만족해하고 기쁨에 넘쳐 있는 것입니다.







(684) 무릇 살고 있는 자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사람, 가장 높은 사람, 황소 같은 사람, 살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높은 분은, 머지 않아 선인들이 모이는 숲에서 법바퀴(法輪)를 굴릴 것입니다.



용맹스런 사자가 뭇 짐승들을 이기고 포효를 하듯이."







(685) 선인은 그 말을 듣자 급히 인간세계로 내려 왔다.



그리고 숫도오다나왕의 궁전에 가까이 가서 석가 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도 한 번 뵙고 싶습니다."







(686) 그리하여 석가족들은 솜씨 있는 금공(金工)이 만든 황금처럼 반짝이며 행복에 빛나는 거룩한 아기의 얼굴을 아시타 선인에게 보였다.







(687) 불꽃처럼 빛나고 하늘의 달처럼 맑으며, 구름을 헤치고 비치는 가을 태양처럼 환한 아기를 보고 환희에 넘쳐 몹시 기뻐했다.







(688) 신들은 뼈가 있고 천개의 둥근 고리가 달린 산개(傘蓋)를 공중에 펼쳤다. 또 황금 자루가 달린 불자(拂子)를 위 아래로 흔들었다. 그러나 불자나 양산을 손에 쥔 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689) 칸히시리(아시타)라는 머리 딴 선인은, 머리 위에 흰 양산을 가리고 빨간 모포에 싸여 있는 황금 패물 같은 악기를 보고 기뻐서 가슴에 안았다.







(690) 용모와 신주(神呪 = 베에다)를 환히 알고 있는 그는 황소같이 훌륭한 석가 족의 아기를 안고 그 유다른 상(相)을 살피더니 환성을 질렀다.



"이 아기는 위 없는 사람, 인간 중에서 가장 뛰어났습니다!"







(691) 그러더니, 선인은 자기의 얼마 남지 않는 생애를 생각하고, 말 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선인이 우는 것을 보고 석가 족들은 물었다.



"우리 왕자에게 무슨 장애라도 있단 말인가?"







(692) 석가족들이 걱정하는 것을 보고 선인은 말했다.



"왕자에게 어떤 불길한 상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는 평범한 상이 아닙니다. 주의해서 길러주십시오.







(693) 이 왕자는 깨달음의 궁극에 이를 것입니다. 이 아기는 가장 으뜸가는 청정을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고 불쌍히 여긴 나머지 법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그의 청정한 행은 널리 펼쳐질 것입니다.







(694)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살, 내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도중에서 내게는 죽음이 찾아올 것입니다.



나는 비할 데 없이 큰 힘을 가진 사람의 가르침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슬퍼하는 것입니다."







(695) 청정한 수행자 아시타 선인은 석가족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 주고 궁중을 떠나갔다. 그는 자기의 조카나아라카를 불러 비할 데 없이 큰 힘을 가진 사람의 교법을 따르도록 하였다.







(696) "만일 네가 나중에`눈뜬 사람이 깨달음을 펴고 진리의 길을 간다’는 말을 듣거든, 그 때 그곳으로 가서 그 분의 가르침을 따라 그 밑에서 청정행을 닦아라."







(697) 남을 위해 걱정하고 미래에 있어서 최상의 청정행을 예견한 그 성인에게 가르침을 받고 온갖 착한 일을 쌓을 나아라카는 승자(勝者 = 부처님)를 기다리면서 스스로의 감관을 지키고 살아갔다.







(698) 훌륭한 승자가 <법바퀴>를 굴린다는 소문을 듣고, 아시타 선인이 일러 준 대로 으뜸가는 선인(부처님)을 보고 기뻐하며 거룩한 성인에게 행을 물었다.







- 서문의 싯귀(詩句)는 끝났다 -







(699) 나아라카가 말했다.



"아시타가 알려 준 말을 잘 알아 들었습니다. 그러하오니 고오타마시여, 모든 것에 통달하신 당신께 묻겠습니다.







(700) 저는 출가하여 탁발(托鉢)의 행을 쌓으려 하오니, 성스러운 행과 으뜸가는 길을 말씀해 주십시오."







(701) 스승(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에게 성스러운 행을 일러 주리라. 이것은 행하기 어렵고 이루기 힘들다. 이제 그대에게 그것을 알려 줄 것이니, 마음을 굳건히 하라.







(702) 마을에서 욕을 먹든지 절을 받든지 한결 같은 태도로 대하여라.



욕을 먹더라도 성내지 말며, 절을 받더라도 우쭐거리지 말고 냉정하여라.







(703) 가령 동산의 숲속에 있더라도 불꽃처럼 여러 가지가 나타난다. 아낙네는 성자를 유혹한다. 아낙네로 하여금 유혹하도록 하지 말라.







(704) 성 행위(性行爲)에서 떠나 온갖 욕망을 버리고, 약하고 강한 모든 생명 있는 것에 대해 적대시 말고, 애착하지도 말라.







(705) 그들은 나와 같고 나도 그들과 같다고 생각하여, 생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또한 남들로 하여금 죽이게 해서도 안 된다.







(706) 범부가 집착하는 욕망과 욕심을 떠나 눈있는 사람은 길을 가라. 지옥을 벗어나라.







(707) 배를 주리고 음식을 절제하여 욕심을 없애고 탐내지 말라. 욕망을 버리면 욕심이 없어 평안하다.







(708) 그 성자는 탁발을 끝내고 숲에 돌아와 나무 아래 머물러 앉아야 한다.







(709) 그 현자는 전신의 안정에 전념하고 숲에서 즐기며 나무 아래서 명상함으로써 스스로 만족해야 한다.







(710) 날이 새면 마을로 가야 한다. 신도에게서 초대를 받거나 마을에서 음식을 가져 올지라도 결코 반겨서는 안 된다.







(711) 성자는 마을에 이르러 집들을 조급하게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이야기를 끊고 음식을 얻으려는 생각으로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







(712) `음식을 얻어서 잘 됐다’`얻지 못한 것도 잘 됐다’ 생각하고, 완전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라도 태연히 돌아온다.



마치 과일을 얻으려고 나무밑에 간 사람이 과일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태연히 돌아오는 것처럼.







(713) 그는 바리때를 손에 들고 돌아다니며, 벙어리는 아닌데 벙어리처럼 보이는 것이다.



시물(施物)이 적다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시주를 업신여겨서도 안 된다.







(714) 사문(부처님)은 높고 낮은 여러 가지 도(道)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거듭 피안에 이르는 일은 없으나 한 번에 이르는 일도 없다.







(715) 윤회의 흐름을 끊은 수행승에게는 집착이 없다. 해야 할 선(善)도, 하지 말아야 할 악도 버렸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것이다."







(716) 스승은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에게 성자의 길을 말하리라.



음식을 얻을 때에는 면도날의 비유처럼 하여라.



혀를 입천정에 붙이고 스스로 배를 주리라.







(717) 마음이 침체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쓸데없이 많은 것을 생각해서도 안 된다.



비린내가 없이, 걸림이 없이, 청정한 행을 궁극의 의지처로 삼아라.







(718) 홀로 앉는 일과 도인에게 봉사하는 일을 배우라.



성인의 길은 홀로 있는 것이다.



홀로 있어야만 즐거울 수 있다.







(719) 그렇게 하면 그는 시방(十方)에 빛이 나리라.



욕망을 버리고 명상하고 있는 여러 현자들의 명성을 들으면, 내 제자는 더욱더 부끄러움과 믿음을 일으켜야 한다.







(720) 이 일을 깊은 늪과 얕은 개울물의 비유로 알아라.



바닥이 얕은 개울물은 소리내 흐르지만, 큰 강물은 소리없이 흐르는 법이다.







(721)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찬 것은 아주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반쯤 물을 채운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이는 물이 가득찬 연못과 같다.







(722) 사문이 의미 있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스스로 알고 법을 설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알고서 많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723) 그러나 스스로 알고 자제하여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성인으로서 성인의 행에 알맞다. 그는 성인으로서 성인의 행을 체득한 것이다."











12. 두 가지 관찰







(724)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사아밧티이의 동원(東園)에 있는 미가아라 장자 어머니의 누각(鹿子母講堂) 안에 계시었다. 그 때 거룩하신 스승은 정기적인 집회(布薩) 날인 달 밝은 보름밤에 수행승(비구)의 무리에 둘러 싸여 집밖에 계시었다.



거룩하신 스승께서는 묵묵히 앉아 있는 수행승들을 돌아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여러 수행승들이여, 착하고 거룩하게 집을 나와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 가지 진리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착하고 거룩하게 집을 나와 깨닫게 하는 여러 가지 진리를 듣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고 누가 그대들에게 묻거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라.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기 위해서’라고. 그렇다면 그대들이 말하는 두 가지란 무엇이냐고 한다면,`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하는 것이 하나의 관찰이고,`이것은 괴로움의 그침이다.



이것은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이다’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중에서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證得)하든가, 혹은 번뇌의 남음이 있는 이 헤매는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거룩한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그리고 행복한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괴로움을 모르고, 또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모르며, 괴로움을 남김없이 없애는 방법도,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도 모르는 사람들.







(725) 그들은 마음의 해탈을 얻지 못하고, 지혜의 해탈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윤회를 끊어 버릴 수가 없다.



그들은 생과 늙음을 받는다.







(726) 그러나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고, 괴로움을 남김 없이 없애는 방법을 알고, 또한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을 안 사람들.







(727) 그들은 마음의 해탈을 이루고, 지혜의 해탈도 구현한다. 그들은 윤회를 끊어 버릴 수가 있다. 그들은 생과 늙음을 받지 않는다."







(728) "수행승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할 수가 있는가 하고 묻는 이가 있거든,`있다’고 대답해라. 무슨 까닭인가. 어떤 괴로움이라도 모두 업(業)에 따라 생기는 것이라고 함이 하나의 관찰이고, 그러나 업을 남김 없이 끊어 버린다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든가, 혹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헤매는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거룩한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행복한 스승께서는 다시 다음같이 말씀하셨다.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괴로움은 생존의 업에 따라 일어난다. 참으로 알지 못하고 그 생존의 업을 짓는 어리석은 자는 되풀이해서 괴로움을 받는다.



그러므로 똑똑히 알고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관찰해 업을 짓지 말아라."







(729) "수행승들이여, 또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하고 그대들에게 묻는 이가 있거든, `있다’고 대답해라. 어째서 그런가. 어떠한 괴로움이든 무명(無明)으로 인해서 생긴다고 함이 하나의 관찰이다. 그러나 무명을 남김 없이 없애 버린다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함이 둘째 관찰이다. 이와 같이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든가, 또는 번뇌의 남음이 있는 헤매는 이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같이 말씀하셨다.







"이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되풀이하여 윤회를 받는 사람들은 그 귀취가 무명에만 있다.







(730) 이 무명이란 커다란 헤매임인데, 이로 말미암아 오랜 윤회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밝은 지혜에 이른 중생들은 다시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







(731) "수행승들이여, 또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라고 누가 그대들에게 묻거든`있다’고 대답해라. 어째서 그런가. 어떠한 괴로움이든 모두 형성력(形成力)으로 인해 생긴다 함이 하나의 관찰이다.



그러나 형성력을 남김 없이 없애 버린다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함이 둘째 관찰이다. 이와 같이 두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 어느 한가지를 기대할 수 있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든가, 또는 번뇌의 남음이 있는 이 헤매는 생존에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같이 말씀하셨다.







"어떠한 괴로움이 모두 형성력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 모든 형성력이 없어진다면 괴로움이 생기지도 않는다.







(732) 괴로움은 형성력으로 인해 일어난다고 알아서, 모든 형성력을 없애고 욕심을 끊는다면, 괴로움은 없어지고 만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라.







(733)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안 현자나 베에다에 통달한 사람들은, 악마의 속박에서 벗어나 다시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







(734) "수행승들이여, 또 다른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는 방법은 없는가고 그대들에게 누가 묻거든`있다’고 대답해라. 어째서 그런가. 어떤 괴로움이든 식별(識)로 인해서 일어난다 함이 하나의 관찰이다. 그러나 식별작용을 남김 없이 없앤다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 함이 둘째 관찰이다.



이와 같이 두가지를 관찰하여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중 어느 하나가 기대된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든가, 또는 번뇌의 마음이 있는 이 헤매는 미망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떠한 괴로움이 생길지라도 그것은 모두 식별작용으로 인해 일어난다. 식별작용이 소멸된다면 괴로움이 생길 수 없다.







(735) 괴로움은 식별작용에 의해 일어난다고 알아 식별작용을 고요히 가라앉힌 수행승은, 쾌락을 탐하지 않고 평안에 돌아가 있다."







(736) "수행승들이여, 또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는 다른 방법은 있는가 라고 그대들에게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해라. 어째서 그런가. 어떤 괴로움도 모두 접촉으로 인해서 일어난다 함이 그 하나의 관찰이다.



그러나 접촉을 남김 없이 아주 없애 버린다면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함이 둘째 관찰이다. 이와 같이 두 가지로 바르게 관찰하여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 어느 하나가 기대된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든가, 또는 번뇌의 남음이 있는 이 헤매는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접촉에 얽매이고, 생존의 물결에 밀리며, 사특한 길에 든 사람은 속박을 끊기 어렵다.







(737) 그러나 접촉을 잘 알아 평안을 즐기는 사람은, 실로 접촉을 없애 버렸기 때문에 쾌락을 느끼지 않고 평안에 돌아가 있다."







(738) "수행승들이여, 또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라고 누가 그대들에게 묻거든`있다’고 대답해라. 어째서 그런가. 어떤 괴로움도 모두 감수(感受)로 인해서 일어난다 함이 하나의 관찰이다. 모든 감수를 남김없이 없애 버린다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와 같이 두 가지로 바르게 관찰하여 게으르지 않고 정진



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개의 과보 중에 어느 하나가 기대된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거나, 또는 번뇌의 남음이 있다면, 이 헤매는(迷妄) 생존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같이 말씀하셨다.







"즐겁든 괴롭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건 간에 냇적으로나 욋적으로 감수된 것은 모두,







(739) 괴로움이라 알고, 없어지고 말 허망한 사물에 접촉할 때마다 소멸을 인정하고야 그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온갖 감수가 소멸하기 때문에 수행승은 쾌락을 느끼지 않고 평안에 돌아가 있다."







(740) "수행승들이여, 또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라고 누가 그대들에게 묻거든 `있다’고 대답해라. 어째서 그런가. 어떤 괴로움도 모두 애착으로 인해 일어난다 함이 하나의 관찰이다. 그러나 애착을 남김 없이 없애 버린다면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함이 둘째 관찰이다. 이와 같이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고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들에게는 두 과보 중에 어느 하나가 기대된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거나, 또는 번뇌의 남음이 있는 이 헤매는 생존에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애착을 벗삼는 사람은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영원히 굴러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741) 애착은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이라는 이 우환을 알아, 수행승은 애착을 버리고 집착 없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편력해야 한다."







(742) "수행승들이여, 또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라고 누가 그대들에게 묻거든 `있다’고 대답해라. 어째서 그런가. 어떤 괴로움이든 모두 집착으로 인해 일어난다 함이 하나의 관찰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집착을 남김 없이 없애 버린다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와 같이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여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 어느 하나가 기대된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거나, 번뇌가 남아있는 이 헤매는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집착으로 인해 생존이 생긴다. 생존하는 자는 괴로움을 받는다. 태어난 자에게는 죽음이 있다. 이것이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이다.







(743) 그러므로 현자들은 집착이 소멸되는 까닭을 바르게 알고, 태어남의 소멸을 잘 알아 다시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







(744) "수행승들이여, 또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라고 누가 그대들에게 묻거든 `있다’고 대답해라. 어째서 그런가. 어떤 괴로움이든 모두 기동(起動)에 의해서 일어난다 함이 하나의 관찰이다.



그러나 기동을 남김 없이 없애 버린다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와 같이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여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들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 어느 하나가 기대된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거나, 번뇌가 남아있는 이 헤매는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떠한 괴로움도 모두 기동(起動)으로 인하여 생긴다.



모든 기동이 소멸되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







(745) 괴로움은 기동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모든 기동을 버리고, 기동이 없는 상태에서 해탈하여,







(746) 생존에 대한 애착을 끊고 마음이 고요한 수행승은 생의 윤회를 벗어난다.



그는 다시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







(747) "수행승들이여, 또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라고 누가 그대들에게 묻거든 `있다’고 대답해라. 어째서 그런가. 어떠한 괴로움이든 모두 음식으로 인해 일어난다 함이 하나의 관찰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음식을 남김 없이 없애 버린다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와 같이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여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 어느 하나가 기대된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거나 또는 번뇌가 남아있는 이 헤매는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떠한 괴로음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은 모두 음식으로 인해 생긴다. 모든 음식이 소멸되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







(748)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 생긴다는 이 우환을 알아, 모든 음식을 잘 알고 모든 음식에 의지 하지 않는다.







(749) 모든 번뇌의 때를 없애 버림으로써 병이 나지 않음을 바르게 알고 반성하여 음식을 애용하고, 이치에 사는 베에다의 달인(達人)은 어리석은 생존자의 수에 들지 않는다."



        



(750) "수행승들이여, 또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라고 누가 그대들에게 묻거든 `있다’고 대답해라. 어째서 그런가. 어떤 괴로움이든 모두 동요(動搖)로 인해 일어난다 함이 하나의 관찰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동요를 남김 없이 없애 버린다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와 같이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여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 어느 하나가 기대된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거나, 번뇌가 남아있는 이 헤매는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떠한 괴로움이 일어날지라도 모두 동요로 인해서 일어난다. 모든 동요가 그치게 되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







(751) 괴로움은 동요로 인해 일어난다고 알아서, 그 때문에 수행승은 애착의 동요를 버리고, 모든 형성력을 종식시켜, 무동요 무집착으로 바른 생각을 가지고 편력해야 한다."







(752) "수행승들이여, 또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라고 누가 그대들에게 묻거든 `있다’고 대답해라.



어째서 그런가. 걸림이 있는 사람은 주저한다는 것이 하나의 관찰이다. 걸림이 없는 사람은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와 같이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 어느 하나가 기대된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거나, 번뇌가 남아있는 이 헤매는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걸림이 없는 사람은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걸림이 있는 사람은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집착하고 있어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753) 여러 가지 걸림 속에 커다란 두려움이 있다는 이 우환을 알아, 수행승은 걸림 없고 집착 없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편력해야 한다.







(754) "수행승들이여, 또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라고 누가 그대들에게 묻거든`있다’고 대답해라. 어째서 그런가. 물질적 영역보다도 비물질적 영역이 더욱더 고요하다고 하는 것이 하나의 관찰이다. 비물질적 영역보다 소멸의 편이 더욱 고요하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와 같이 두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



행승들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 어느 하나가 기대된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거나, 번뇌가 남아있는 이 헤매는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물질적 영역에 태어나는 모든 생물과 비물질적 영역에 사는 모든 생물들은 소멸을 모르기 때문에,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







(755) 그러나 물질적 영역을 잘 알고, 비물질적 영역에 안주하여 소멸에서 해탈한 사람들은 죽음을 버린 것이다."







(756) "수행승들이여, 또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라고 누가 그대들에게 묻거든 `있다’고 대답해라.



어째서 그런가. 수행승들이여,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 사문,바라문,신,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진리다’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허망하다’고 사실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하나의 관찰이다.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이것은 허망하다’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진리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와 같이 두 가지를 바르게 보아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 어느 하나가 기대된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거나, 번뇌가 남아있는 이 헤매는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보라. 신과 세상사람들은 내가 아닌 것을 나(我)라고 생각하고 명칭(名)과 형태(色)에 집착해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757) 어떤 것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이 사실과는 다르다. 왜냐 하면, 어리석은 자의 생각은 허망하기 때문이다.



지나 가버리는 것은 허망한 것이므로.







(758) 그러나 안정은 허망한 것이 아니다. 성자들은 이것을 진리로 안다. 그들은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쾌락을 탐하지 않고 평안에 돌아간 것이다."







(759) "수행승들이여, 또 두 가지 일을 바르게 관찰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라고 누가 묻거든`있다’고 대답해라. 어째서 그런가. 수행승들이여,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 사문,바라문,신,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이것은 안락이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이것은 고뇌다’라고 사실대로 바른 지혜로써 살핀다.



이것이 하나의 관찰이다.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 사문,바라문,신,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이것은 고뇌다’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안락이다’고 사실대로 바른 지혜로써 살핀다. 이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와 같이 두 가지를 가지고  바르게 살피며,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 어느 하나가 기대된다. 즉, 현세에서 지혜를 증득하거나, 번뇌가 남아있는 이 헤매는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있다고 할 수 있는 빛깔,음성,향기,맛,만져지는 것,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한결같이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







(760) 그것들은 실로 신이나 세상사람들에게는 다같이 <안락>이라 인정되고 있다. 또한 그것이 멸할 때에는 그들은 그것을 <고뇌>라고 생각한다.







(761) 그러나 성인들은 자기의 신체를 단멸(斷滅)하는 것이 안락이라고 생각한다. 바르게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세상의 사람들과는 정반대다.







(762) 다른 사람들이 <안락>이라 하는 것을 성자들은 <고뇌>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고뇌>라고 하는 것을 성자들은 <안락>이라고 생각한다. 알기 어려운 진리를 보라. 무지란 사람들은 여기서 헤매게 된다.







(763) 덮여 있는 사람에게는 어둠이 있다. 바르게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암흑이 있다. 선량한 사람에게는 펼쳐 보임(開顯)이 있다. 마치 볼 수 있는 사람에게 광명이 있는 것처럼. 이치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짐승같은 치인(痴人)은 안락의 곁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른다.







(764) 생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히고 생존의 흐름에 떠 내려가, 악마의 영토에서 사는 사람은 이 진리를 깨닫기 힘들다.







(765) 성자들 말고 누가 이 경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이 경지를 바르게 알면, 번뇌의 때가 묻지 않은 이가 되어 원만한 평안에 들어가리라."







스승(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은 기뻐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이 설법이 있을 때 육십명의 수행승들은 집착이 없어져 마음이 더러움에서 해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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