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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그날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통일각. 진주 촉석루가 지척에 보이는 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경관 마져 수려한 한식당. 안내를 받아 들어간 2층 아담한 방에서 오즈홈을 찾는 여덟명의 문객들이 마주보고 앉아 다시 한번 상견레를 갖추고 두칠님이 미리 예약하신 듯한 떡갈비(제생각으로는 언양불고기)에 이 고장 먹거리인 듯한 국밥으로 조금 늦은 듯한 저녁식가 자리가 마련되었다. 용가리님, 갈대님과 저는 3시가 넘어 점심을 먹었기에 괞쟎았지만, 초롬이님, 오즈님 그리고 부산에서 오신 두분 얼마나 시장하셨을까? 후덕하게 생긴 종업원이 반찬도 듬뿍 가져다 주겠다. 시원한 국물에 시장기를 달래는데, 용가리님 술잔은 바쁘게 오간다. 두칠이님 갈대님은 운전하시겠다고 사양하고 이몸도 실력이 하찮은지라 용가리 제세상 만난 듯 든든한 입심에 술심 또한 가히 통뼈라. 소주 두어병이 순식간에 바닥이 난다.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잠시 휴식 겸 짬을 내어 촉석루를 돌아보기로 하고 마침 야간이라 무료로 개방하는 촉석루공원에 입장하였다. 끼리 끼리 모여 걸으면서 나누는 대화 속에 진주의 밤은 흐르고 촉석루 아래 유유히흐르는 강물에 비치는 만월이 살랑이고 수천 개의 불빛이 잔잔하게 물결치는 호수에 반짝여 강은 빛나게 타오르는가 예로 부터 이곳 진주는 충절의 고장 향학열이 높아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으며 지금도 정부요직에는 이 지방 출신 인물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음을 부정하지는 못할 터. 촉석루를 끼고 도는 잘 정돈된 공원 산책길은 진주 시민의 애환과 사랑으로 지켜온 길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이지만 조금도 낯설지 않고 마치 오랜 시간 함께한 지우처럼 대화하며 거니는 발길 또한 가벼운데... 고목의 잎새는 바람에 살랑이고 중천에 걸린 보름달빛에 부서져 반짝이는 풀잎들 달무리를 벗어나 칠흙하늘의 별들은 저마다 밝기를 자랑하는데 앞서 걷는 두칠이 부산아가씨와 무슨 얘기 그리도 많은지.... 저녁은 깊어가고 계절을 근심하는 듯 길섶 풀벌레소리 애처럽게 들리는 시간에 어스름 달빛 식당에서 홀짝마신 소주기운이 볼을 타고 피어 올라 마음은 사르르 뎁혀져오는데 언덕아래 남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더라. * 강에는 물만 있는것이 아니다. 그 곳에 달이 뜨고 별들 또한 반짝인다. 가로등이 길게 누워 하늘을 보고 네온 마져 가라앉아 은빛으로 출렁인다. 강에는 반짝이는 불빛만 있는것이 아니다. 그곳이 당신이 있고 내 또한 게 있도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원한의 왜장을 껴안고 초연히 몸을 날린 여인의 혼이 내려 반짝인다. 하늘의 구름이 내려와 어둠의 그늘을 드리우기엔 천년 세월이 너무 짧다고 별들은 더 더욱 반짝이며 흘러간다. * <왕년에 음주운전 안해 본 사람있음 나와 봐!!!!> 그토록 말려도 듣지 않는 용가리 객기 땜시로 무언 중에 슬슬 꽁무니를 쳐 두칠호로 향하고 우리는(갈대님과 나와 현주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소주 두 병을 담은 전설의 인물 용가리호에 몸을 맡겼다. 강변을 끼고 도는 도로를 빠져나와 시내로 접어드니 네온 사인 번쩍이는 남도진주의 야경이 우릴 반기는데. 교통지옥은 지방이라고 다를 리 없고 꼬리를 무는 차량의 행렬을 뒤로하고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오르니 차창으로 스며드는 가을 내음이 바람에 실려오는데... 음주면허증이 위력을 발하는가? 곧게 뚫린 한길을 잘도 달린다. 단성 인터체인지를 내려와 중산리로 향하는 지방도로엔 포장이 말끔이 되어있어 승차감 좋고 드라이브 코스 또한 좋으니, 흗날리는 담배연기에 세상의 근심걱정 모두 모두 날려보내며, 희미하게 시야를 채워오는 지리산자락을 말없이 음미했더라. 가는 도중에 차를 세우고 두칠님이 내리기에 따라 내렸더니 남명 조식선생이 지리산을 조석으로 보기위해 세웠다는 산천제의 서제 앞에서 설명을 듣고 달빛에 의연히 모습을 드러낸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그 분의 나라사랑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 여기 한번 눌러보세요 (산천제) 달리던 차가 좌회하여 공사장이 있는 골자기로 들어서는데... 언젠가 두칠님 산행기에서 읽은 '양수발전소가 앗아간 거림마을'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길가의 공사안내판을 보고 양수발전소 얘길 잠간 나누었는데 제가 나이탓인지 착각을 하여 양수발전에 대해 엉터리설명을 한 점, 이 기회를 빌어 사과드립니다. 양수발전은 발전을 위해 쏟아내린 수자원을 하부저수지에 모으고 이물을 심야에 남는 전력을 이용 상부저수지로 퍼올려 다시 발전에 이용하는 시스템인데, 그 날 제가 엉뚱한 설명을 한 것 같습니다. 어쨋든 그 날 왜 흙먼지 풀풀 날리는 공사장을 들어갔다 나왔는 지 우리는 모름니다. 앞차에는 두칠님이 일일이 설명했으니 잘 아시겠지만 우리는 앞차 가는 대로 꽁무니만 쫓아갔으니 왜 갔는지 알 수 없지... 아마 개발로 인해 사라져 가는 자연에 대한 두칠님 생각을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었는지... 완만한 경사로 난 길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 우리의 목적지 거림골 민박집에 다다르니 환갑은 족히 넘겼음직한 노 부부가 반가이 맞는다. 목적지에 무사히 다다른 감격에 겨워 골자기를 호령하는 냇물 흐르는 소리도 지리산을 감싸고 휘영청 밝은 빛을 내리는 달님도 잊은 채 갑자기 우리의 주변을 감아오는 한기를 피하려는 듯 모두들 방으로 들어서고... 여기서 부터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는 환희의 시간이 시작된다. 열한시를 넘긴 시간 거림산장 사랑방 반상을 두개나 늘려놓고 마주 앉은 자리에 초롬이님, 안성에서 준비해 오신 떡과 고기와 쌈재료가 어우러져 그득하고 두칠님이 또 특별히 준비한 싱싱한 생선회로 구색을 맞추니 산해진미가 따로 있을소냐? 두칠님 산행 중에 구해서 담궈두었던 오미자술, 매실주로 건배하고 오즈님 발표하시길 '오늘은 문학의 밤이지만, 지리산 달빛에 취하는 밤'으로 인사하시매 제일 즐거워하는 용가리님. 각자 일갈하고, 일배를 서슴치 않더라... 잠간, 두칠님 설명에 의하면 이곳 거림골이 남부군에서 빨치산 활동의 무대였던 역사의 현장이고 님은 오래전부터 혜아릴 수 없이 많이 다녀 익히 알고 있는 곳. 이곳 골자기의 물은 최상급수로 언제나 식수로 사용해도 좋을 정도로 깨끗하고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줄지 않는 깊은 계곡이란다. 글에도 썼듯이 주인어르신과는 오래 전 부터 들르는 사이로 부담없고 오늘 마침 달이 밝으니 지리산 정취를 맘껏 느껴보라 한다. 아쉬운 것은 건강상 이유로 두칠이님 술을 마시려 들지 않으니 어이하랴. 에라! 모르겄다. 나라도 대신 마시고 취해나 보자! 이 후 용가리님의 호쾌한 웃음과 찐한 대화로 분위길 잡아가고 이에 질세라 중원의 여걸 초롬아씨가 날쌔게 대작을 하시는 디... * 저 달이 와 저리 밝은 지 내는 모린다. 오늘밤 생면초지 님들과 취하지 않으면 두치리 명정기 판권 떨어질까 걱정된다. 주는 대로 받고 받는 대로 마시면 될거 아이가. * 두칠이님 점잖게 일어나더니 마이크를 잡고 한 곡조 꽝! 이 때 부터는 갈대님, 초롬이님 시상. 내는 노래도 잘 모하고, 술도 그리 모하니 님들 노시는 구경이나 할 수 밖에... 흐르는 노랫가락에 쌓이는 건 빈 술병이라, 아주머니도 노래가락에 흥겨웠던지 노랗게 익은 동동주를 단지채 들고 오신다. "숙취엔 토종꿀이 지일이여!" 하시며 아저씨는 꿀을 듬뿍 떠서 내 놓는다. 아! 세상의 훈훈한 인심이여... 어릴 때 농사를 지으시며 헛간 옆에 벌통을 놓아 이맘때면 담배연기 풀풀 내뿜으시면서 꿀을 따시던 아버님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건 그 때 그맛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기때문이리라. 살아가며 가슴을 여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건만. 자라나면서 세차게 몰아쳤던 근대화 바람속으로 사람의 정들을 날려보내고 저마다 혼자서만 잘 살아보겠다고, 하나 더 얻겠다고 바둥대며 살았기에 정의 목마름 같은 건 느낄 수도 없을 만큼 바삐 지나온 시간들. 메마른 가슴에 넘치도록 따사로운 대화가 흐르고 더하는 술잔의 수 만큼이나 주고 받는 이야기의 정겨움은 더해 가는데... 마시는 이는 마시고, 노래하는 이들은 목이 터져라 노래부른다.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 나서니 시간은 새벽 세시를 지나고 있지만 냇물 흐르는 소리는 그 크기를 더해 함성처럼 들려오고 바위를 기어내려 냇물에 손을 담그니 얼음처럼 차디차다. 순간 취기마져 사라지고 달빛은 지리산을 타고내려 바위마다 부서진다. 쏟아져 내리는 물살이 부딫쳐 하얀 배를 들어냈다 이내 감춘다. 바람도 자고 계곡의 나무들도 잠든 시간 한층 밝아진 하늘에는 별들이 지척에서 반짝인다. 방에 돌아오니 거구의 용가리님이 먼저 자리에 누었다. 노랫소리도 시냇물 쏟아지는 소리도 용트림 속으로 묻혀 들고 거림골 그날의 달빛도 조용히 추억속으로 묻히고 있었다. 2000.1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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