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어디서 오는 걸까, 이 쉼없는 바람은
겨우내 들녘 끝에서 썩은 폐부로 헐떡이는 생이련가
밤마다 허공을 가르던 너의 아픈 휘파람소리
듣는 이도 없는 노래를 끝없이 부르며
저 혼자 기뻐하고 저 혼자 슬퍼한 사랑아
가끔, 길 잃은 새가 찾아와 쉬어가는 가지
껴안고 싶어도,
네가 맨살의 부끄러움에 떨며 울 때
새들은 금새 제 길 찾아 떠나가고
우우우우, 바람은 눈구름 몰고와
막막한 들판의 남은 길마저 지워버린다
너의 뼛속 마디마디 숨긴 사랑, 뜨거워도
지금은 모두가 외면하는 빈한의 계절
섬뜩한 광기만 살아
푸른 도깨비불로 떠다니는 시절인데
매서운 바람에 잘려나가는 무수한 손가락
火印처럼 네 가슴에 새겨진 시린 상처여
그래도 멈출 수 없는 너의 노래,
순전한 가슴으로 불러야 할 노래 하나 있어
수리성 쉰 목소리로 온 밤을 지새고
깜박이는 마지막 별빛을 우러러
끈질긴 뿌리의 꿈,
여리고 순한 잎새의 푸른 꿈을 키우는가
마침내 겨울도 가고 물소리 싱싱한 봄이 와
따스한 햇살 마시며 꽃망울 터뜨리는 날
너의 향긋한 꽃그림자 아래
초롱한 눈망울의 이쁜 소녀 하나 찾아와
네 열열한 가슴 껴안고 그 겨울의 진실을 울어줄건가
나무여, 기다림 속에서 팔 벌린 겨울나무여
너는 오직 살아있는 나무,
이 밤도 쉼없이 너의 남은 노래를 불러라.


-2000.1.

* 박호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