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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안동권씨 충재고택(安東權氏 冲齋古宅)
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산 131
건축주 :  권벌(權橃)
건축시기 :  16세기 초
소유자 :  권정우 (權廷羽)(관리자 : 권정우 (權廷羽))
문화재 :  사적 및 명승 제 3호 , 1963-03-28 지정, 216,192㎡

건축 구성

안동권씨 충재고택의 건물들은 2선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1선을 이루고 있는 것은 행랑채, 유물관, 충재 청암정이다. 2선을 이루고 있는 것은 본채, 사당과 그 부속 건물 등이다. 행랑채는 7칸으로 되어 있다. 중앙 1칸에는 솟을대문이 높게 가설되었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 반의 규모이다. 건물의 높이는 통상의 경우보다 높다. 口자 모양을 하고 있는 좌·우의 연결채와는 지붕이 서로 떨어져 있다. 왼쪽 연결채와는 벽을 같이하여 아랫부분은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고 지붕의 높이가 서로 달라 어긋나 있다. 오른쪽 건물채와는 건물 사이가 2m 정도 떨어져 위 아래로 완전히 떨어져 있다.

안동권씨 충재고택 영역의 서쪽 끝부분에는 청암정이 있다. 이 정자는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집안 정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산간정자로서도 이만한 풍광을 갖추고 있는 곳은 없다. 청암정 영역에는 충재(沖齋) 건물이 같이 어울려 있다. 남북방향을 축으로 서 있는 작고 아담한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이다. 사방으로 폭 좁은 쪽마루가 돌아가며, 북쪽 1칸 영역에는 마루방이 마련되어 있다.

문중 이야기
- 유곡의 안동권문

안동권씨유곡종친회에서 펴낸 『유곡』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문과 16인, 소과 59인, 참판 2인, 방백수령 12인, 의병장 3인을 내고, 광복 후 차관 2인, 국회의원 2인을 배출했다.
유곡의 자랑은 1) 산천의 아름다움, 2) 문장 명필의 대가 이어짐, 3)충의와 정절의 고장이다.
특히 영남지방에서는 문필의 마을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천하를 놀라게 할 재주를 가졌으면서도 부형과 조상의 명예를 가릴까봐 나타내지 않고, 혹은 형제들에게 양보하고, 혹은 글을 쓰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문집과 유고를 남긴 이가 90여 명이다. 특히 주옥같은 시 300편을 남긴 충재 선조의 증손인 권상원(權尙遠)과 그의 아우인 권상명(權尙明)은 당대 명인인 이식(李植), 김유(金?), 김응조(金應祖), 윤훤(尹暄), 홍우정(洪宇定) 등과 교유하였다.
5대손에 이르러 이른바 28두(二十八斗)라 하여 두자 항렬 28명이 도학과 문필로 크게 알려졌었다. 유곡에는 6기(六奇)라 하여, 가당(苛塘)의 글-5대손 권두인(權斗寅)의 문장, 창설재(蒼雪齋)의 시-5대손 권두경(權斗經)의 시, 대졸자(大拙子)의 글씨-5대손 권두응(權斗應)의 글씨, 강좌(江左)의 재주-6대손 권만(權萬)의 재주, 평암(平庵)의 충성-7대손 권정침(權正?)의 충성, 송관자(松館子)의 그림-7대손 권정교(權正敎)의 그림을 꼽는다.”

관련이야기
- 월문 안의 넓은 집

안동권씨 충재고택의 건물들은 2선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1선을 이루고 있는 것은 행랑채, 유물관, 충재 청암정이다. 2선을 이루고 있는 것은 본채, 사당과 그 부속 건물 등이다.
행랑채는 7칸으로 되어 있다. 중앙 1칸에는 솟을대문이 높게 가설되었다. 대문의 아래쪽 횡보는 아래로 배가 부른 횡목이다. 대문의 위쪽 횡보는 위로 배가 부른 횡목이다. 그리하여 대문은 위 아래가 자연스럽게 휘어 이지러진 원형을 이루게 되었다.
안동권씨 충재고택의 차종손인 권종목(權宗睦)은 이 문을 ‘월문’이라고 불렀고, ‘대궐 문을 본뜬 것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였다. ‘월문’이라면 만월문이라고 하겠다. 매끈하게 원형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휜 횡목을 사용하여 이지러진 원형을 갖추어 놓은 것이 상당히 재미있어 보인다. 대문칸의 지붕은 좌·우 행랑 칸의 지붕보다 조금 높게 만들어져 있다. 좌·우 행랑채는 각 3칸씩이다.
밖에서 보았을 때 이 행랑채 건물은 각 벽면의 3분의 2 높이까지는 통으로 강돌을 쌓아올려 처리하였다. 각 벽면을 쌓은 강돌은 9줄이다. 이 부분에서 벽면에는 돌과 흙 외에는 기둥도 목재도 보이지 않는다. 그 위 3분의 1 벽면에서 각 벽면은 짧은 기둥을 세워 만든 3칸 구조를 드러낸다. 각 3칸의 좌우 행랑채 벽면 중 오른편 끝의 1칸에는 좌·우 다 옆으로 넓은 직사각형의 창문을 달고 있다. 왼쪽 행랑채에서 그것은 벽면 중앙에 위치하지만, 오른쪽 행랑채에서는 안쪽 기둥에 바짝 붙어 있는 모습이다.
행랑채의 대문과 본채로 들어가는 중문의 시선 방향은 조금 엇갈린다. 중문이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중문의 왼편으로는 2칸 규모의 중문 행랑채 건물이 만들어져 있다. 중문까지 포함하면 3칸 규모이다. 지붕은 우측에 있는 사랑채 건물보다 낮게 되어 있다. 두 건물의 지붕은 서로 합해진다.
행랑채 건물 앞에는 낮은 쪽마루가 가설되어 있다. 행랑채 건물 중문 왼쪽의 2칸은 각 벽면마다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 처리 방식은 사실 나무판 같은 것으로 되어 있지 않은 모든 벽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벽면은 일단 위 1, 아래 4 정도의 비례로 횡단된다.
아래쪽 벽면의 중앙에는 2쪽 방문을 달았고, 좌·우의 빈 벽면은 중간에 짧은 횡목을 넣어 반분하였다. 벽면은 백토로 칠해져 있다. 중문의 오른편에 있는 사랑채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정도의 규모이다. 앞으로 나와 선 것은 원형의 두리기둥이다. 앞의 두리기둥과 뒤의 각재기둥 사이에는 반 칸 넓이의 앞마루가 가설되어 있다. 이 마루 끝 선은 앞쪽 기둥에까지 나와 있다.
4칸 중 중문 쪽 2칸은 방이다. 안으로는 2쪽 미닫이, 밖으로는 2쪽 여닫이 방문이 가운데 마련되어 있다. 4칸 중 다른 2쪽은 마루방의 벽이다. 4칸 긴 방문과 그 위쪽의 옆으로 긴 사각형의 광창으로 벽 전체가 메워져 있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 반의 규모이다. 건물의 높이는 통상의 경우보다 높다. 口자 모양을 하고 있는 좌·우의 연결채와는 지붕이 서로 떨어져 있다. 왼쪽 연결채와는 벽을 같이하여 아랫부분은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고 지붕의 높이가 서로 달라 어긋나 있다. 오른쪽 건물채와는 건물 사이가 2m 정도 떨어져 위 아래로 완전히 떨어져 있다.
동쪽 끝 1칸은 방인데, 이 방의 마루 쪽 벽면을 처리한 방식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중앙의 기둥에서 앞 뒤 양쪽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횡목은 제비 날개 모양으로 양쪽으로 휘어 있다. 그 위쪽의 횡목이 또 양쪽 제비날개 모양의 곡면이 가장 높이 올라서 있는 곳 사이를 서로 곡면으로 연결시킨다.
이 곡면은 위쪽으로 상당히 배가 부풀어져 있다. 이 2개의 휜 목재들은 특별히 휜 모양의 목재를 골라서 이용한 것처럼 보인다. 위쪽 곡면의 가장 배가 부른 부분에서 마치 뜀틀 모양의 폭이 넓은 각재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대들보를 걸쳤다. 이 부분에서 벽면과 기둥, 들보와 횡보, 깊은 기울기의 서까래와 낮은 기울기의 서까래가 서로 어울려 만들어내는 목구조의 미학은 상당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전체 6칸 중 중간 2칸은 마루영역이다. 마루 오른편의 2칸은 앞에 반 칸 넓이의 마루를 두고 있는 방이다. 안채 건물의 오른쪽 마지막 칸은 부엌 영역이다. 이 부분에는 다락이 가설되어 있다. 2칸 방 앞의 반 칸 넓이 앞마루 오른쪽 끝의 벽면에는 다락으로 오르는 4단의 나무계단이 매달려 있다.
안동권씨 충재고택 영역의 서쪽 끝부분에는 청암정이 있다. 이 정자는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집안 정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산간정자로서도 이만한 풍광을 갖추고 있는 곳은 없다. 청암정 영역에는 충재(沖齋) 건물이 같이 어울려 있다. 남북방향을 축으로 서 있는 작고 아담한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이다. 사방으로 폭 좁은 쪽마루가 돌아가며, 북쪽 1칸 영역에는 마루방이 마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