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禮 차례 忌祭 기제 墓祭 묘제 태사공 홀기 충제종택 동영상 지방 축문식 관혼상제 천주교 제사법


 
관혼상제를 사례(四禮)라고 한다. 그런데 관·혼·상의 셋은 모두 한 인간이 일생을 경과하면서 반드시 지나는 통과의례에 해당되지만 제례는 예외적으로 후손이 선대(先代)를 위하여 지내는 예인 것이다. 제례는 조상의 영혼에 관련된 의례이기 때문에 중요할 뿐만이 아니라 조상에 대한 효행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중요한 의례였다.

불교를 누르고 유교숭상을 정책으로 하던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구체적으로 실천되는 방법으로써 이 네 가지 예를 『예서(禮書)』에 준하여 엄격히 실행할 것을 백성들에게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례를 더욱 강조하였던 것이다. 제례야말로 유교가 강조하는 효의 직접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부모나 조부모가 생존하였을 때는 그들을 보살피고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여 드리는 것이 효행이고, 그분들이 돌아가시고 난 뒤는 제사를 정성껏 받들어 망령을 달래고 보호하며 보살피는 것이 효행이 되었던 것이다.

제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서』에 의하면 제례는 사당제(祠當祭), 사시제(四時祭), 이제, 기일제(忌日祭), 삭망제(朔望祭), 조석제(朝夕祭), 출고제, 그리고 묘제(墓祭)의 여덟 종류가 있다. 이러한 모든 제사들이 고루 잘 지켜진 것은 아니다.

우선 사당제를 보더라도, 사당이란 별채의 독립된 가옥으로 조상의 위패(位牌)만 모셔져 있는 곳이니 이것은 사대부나 양반의 집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사당이 없는 집에서는 사당제를 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또 『예서』에는 이제라고 하여 부모를 위한 제사가 따로 있으나 이것은 기일제와 중복이 되기에 별도로 제사를 올릴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사정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사시제와 기일제 그리고 묘제가 주로 지켜져 왔는데 사시제는 간단히 올리는 것이라 차례(茶禮)라 부르게 되었고, 기일제는 간단히 기제(忌祭)라 부르며, 묘제는 정해진 날에 일정하게 지낸다 하여 시제(時祭)라 부르게 되었다. 우리는 차례, 기제, 그리고 시제를 제례로 행하여 온 것이다.

이들 세 가지 제사는 집집마다 거행하는 장소·시기·음식 등에서 차이가 있으며 무엇보다 제사상에 올려 놓는 음식, 즉 제수(祭需)의 규모·차림 등에 차이가 있고 제사를 지내는 양식에도 차이가 있어 이것을 보고 가가례(家家禮)라 하였다.

많은 분들이 익히 알고 있는 차례(茶禮), 기제(忌祭), 묘제(墓祭)에 대해 정리하였습니다.